30년 만에 받은 편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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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호 35면

법관으로 일한 지 30년 가까이 되어간다. 많은 사건을 겪고 처리했는데, 마음에 유독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사법연수생으로 검사시보를 할 때 사형집행을 직접 목격한 일이다.

1980년 12월 어느 토요일 아침, 나는 서울구치소 사형장의 찬 공기 속에 서 있었다. 잠시도 견디기 힘들 만큼 무겁고 긴장된 분위기였다. 얼마 후 교도관들이 창백한 얼굴의 청년을 양쪽에서 붙들고 들어왔다. 강도살인죄를 저질렀다고는 믿기 어려운 온순한 얼굴이었는데, 떨리는 목소리로 피해자에게 사죄하며, 어머니께 죄송하고 신앙을 전해준 교우들에게 감사한다고 유언했다. 교도관이 얼굴에 가리개를 씌우고 의자에 묶으면서 공포감을 덜어주려고 ‘할렐루야’를 외치라고 했다. 그 외침은 잠시 후 ‘덜컹!’ 하는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한 인간의 생명을 끊는 절차로는 너무나 간단했다.

다음 사형수는 하얀 얼굴의 40대 여인이었다. 남편을 독살한 죄였다. 온몸을 와들와들 떨다가 차분한 목소리로 신앙고백을 하고 앞의 청년과 비슷한 모습으로 죽음을 맞았다. 마지막 사형수를 기다리는데 갑자기 힘찬 찬송가 소리가 들리는 것 아닌가. 30대 남자가 들어서는데 얼굴이 밝고 씩씩해 보였다. 두려움을 전혀 찾아볼 수 없었고, 삶의 회한이나 죄책감마저 정리한 평화로움까지 느껴졌다.
올가미가 목에 걸린 마지막 순간에도 “저 먼저 갑니다. 안녕히 계세요”라고 말했다. 교도관들이 눈물을 흘리며 흐느꼈다. 세 사람 모두 교도소에서 가톨릭 영세를 받았고, 성품이 바뀌어 새 사람이 되었다고 했다. 나 역시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그 순간 세 사람은 그 자리에 있는 어느 누구보다도 순결한 사람임에 틀림없었다. 그럼에도 ‘과거’의 죄 때문에 ‘현재’ 정결한 사람의 생명을 빼앗는 것이 정당한가? 죄와 벌, 죽음, 믿음에 관한 혼란으로 가슴이 터질 듯했다.

그날의 충격이 너무 커서 나는 오랫동안 이 일을 아무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었다. 입을 여는 순간 그 의미가 사라질 것 같아서였다. 20년이 지난 후에야 ‘사형장의 세 사람’이라는 짧은 글을 쓸 수 있었다. 죽음을 코앞에 둔 순간에 잘못을 뉘우치고 피해자에게 사죄하며 심지어는 기쁨까지 표현한 그들의 행동에 관해 ‘존엄’이라는 말 외에 달리 표현할 길이 없었다. 그후 법관이 되어 흉악한 범죄자를 여러 번 재판했지만 어떤 죄를 저질렀건 인간으로서 존엄하다는 사실을 잊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해 말, 모르는 분에게서 편지를 받았다. 40여 년간 교도소 종교위원으로 봉사하면서 사형수들에게 신앙을 전하고 어머니처럼 돌보아 온 여성이었다. 그녀는 내 수필집 우는 사람과 함께 울라에 수록된 ‘사형장의 세 사람’을 읽고 깜짝 놀라서 편지를 썼다고 했다. 내 글에 “구치소 정문을 나서다가 세 사람을 도와주던 가톨릭 신도 여러 명이 기다리는 모습을 보았다. 모두 안타깝고 슬픈 표정이었다”는 부분이 있는데, 그 신도 중에 자신이 있었다는 것이다. 사형집행 후 세 사람의 시신을 인수해 장례식을 치러주고서도, 그들이 ‘어떠한 모습으로 사형장에 들어갔을까?’ ‘어떠한 모습으로 죽었을까?’ 걱정을 많이 했는데 내 글을 보고 이제야 마음이 놓인다고 했다.

나 역시 놀랐다. 세 사람이 평온하게 죽음을 맞을 수 있었던 배경을 알게 되니 비로소 마음의 빈 칸이 채워지는 것 같았다. 여자 사형수는 세례명이 율리아였고, 유달리 부끄러움을 많이 탔다고 한다. 신앙생활을 열심히 했으며 강제로 헤어진 외동딸을 보고 싶어 했지만 가족이 거절했다고 한다. 죽은 뒤에는 파란 죄수복 대신에 흰 옷을 입혀달라고 부탁해 하얀 수의를 입혀 입관했다는 것이다. 사형장에서 보았던 그녀의 마지막 표정이 더 또렷해지는 듯했고 가슴이 아려왔다.

나의 글은 그들이 사형당할 때의 마지막 모습을, 그 편지는 그 전후의 사정을 서로 전해줌으로써 세 사람의 이야기가 완성된 셈이다. 그날 구치소 정문에서 그녀와 내가 스쳐갈 때 30년 후 세 사람에 관해 이러한 이야기를 나누리라고 상상이나 했을까? 아니, 그 편지는 그들을 묻고 돌아온 날 그녀가 미리 마음에 써두었던 것이고, 배달만 30년 후에 된 게 아닐까? 죽음과 영원 앞에서 30년과 하루가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30년 만에 온 편지를 읽으면서 우리 삶의 신비에 새삼 가슴이 뜨거워졌다. 우리 삶에 상처와 죄와 어두움이 있지만, 동시에 이를 이기는 용서와 치유와 빛이 있다는 것을 알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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