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을 맑게하는 황홀한 소리,女帝, 자신의 명반과 진검승부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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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호 05면

바이올리니스트 안네 소피 무터(48)는 열세 살 때 데뷔한 이래 ‘신동’이라는 무거운 짐을 어깨에 얹고 지금까지 걸어 왔다. 그는 35년간 여제(女帝)의 자리를 굳건히 지켰으며, 부단한 노력으로 항상 현재를 전성기로 만드는 놀라운 여인이다. 무엇을 기대하든 그 이상을 보여주는 무터의 독주회가 3일 저녁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렸다.5년 만인 이번 내한 독주회에 팬들의 기대는 특히 컸다. 프로그램이 무터의 주요 레퍼토리로 구성됐기 때문이다. 특히 1988년부터 함께 작업해 온 피아니스트 램버트 오키스와 호흡을 맞췄는데, 첫 곡 드뷔시 소나타는 ‘베를린 리사이틀’이라는 타이틀로 함께 음반을 낸 바 있다. 이날의 드뷔시는 드뷔시 특유의 인상주의적 색채를 담았던 기존 녹음과는 달리 무터만의 끈끈한 해석이 가미돼 어딘지 여름 날씨를 연상시켰다.

바이올리니스트 안네 소피 무터 내한 독주회, 3일 예술의전당

이윽고 시작한 멘델스존 소나타 F장조는 드뷔시와 뚜렷한 대조를 이뤘다. 빠른 비브라토와 날렵한 활 쓰기가 상쾌한 봄날 같았다. 2악장의 아름다움은 2009년 녹음한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의 섬세함을 떠올리게 했다. 그 음반은 예전 카라얀과 녹음했던 어린 무터의 순수한 멘델스존과는 또 다른 성숙미를 팬들에게 선사했었다. 3악장에서 무터는 다시 옛날을 회상하게 했다. 마치 20대 초반의 무터가 무대 위에 서있는 것이 아닌가 착각할 정도로 에너지가 넘쳤다.

함께한 오랜 세월을 증명하듯 피아니스트 오키스는 무터의 숨소리까지도 따라가는 그림자 같은 완벽한 ‘반주자’였다. 그러나 멘델스존 소나타처럼 무터가 ‘젊은 무터’로 변신해 화려하고 생기 있는 연주를 펼칠 때엔 조력자가 아닌 ‘동반자’로서의 피아니스트 역할이 아쉬웠다. 성숙함과 활기를 넘나드는 무터의 연주를 접하면서 한번쯤은 무터가 자신과 같은 에너지를 뿜어내는 피아니스트와 함께 무대에 서보는 것이 어떨까 싶었다. 비록 완벽한 조화를 이루지 못할지라도 말이다.

이날의 백미는 모차르트 소나타였다. 그녀와 모차르트의 인연은 각별하다. 모차르트 협주곡으로 카라얀과 인연을 맺었다. 5년 전에는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과 자신의 데뷔 30주년을 기념해 ‘모차르트 프로젝트’ 음반을 내고 우리나라를 포함한 세계 순회공연을 했다. “내가 여섯 살에 만난 모차르트는 단순히 여러 작곡가 중 한 명이 아니다. 나와 함께 자라고 인생의 중요한 시점에서 나를 기다려 준 소중한 존재”라는 그녀의 표현처럼, 무터의 모차르트에는 40여 년을 함께한 연륜이 묻어 있었다. 다소 낭만적인 해석에도 그녀의 모차르트는 순수함과 고상함을 잃지 않았다. 무게를 싣지 않고 호흡하는 무터의 활이 천상의 소리를 뽑아냈기 때문이다. 미세한 부분까지도 오키스와 대화하는 황홀한 연주에 영혼까지 맑아지는 느낌이 들었다.

마지막 곡인 사라사테의 카르멘 환상곡에서는 도이치 그라모폰의 베스트셀러 음반의 주인공답게 건재함을 과시했다. 이어 무터는 기립박수로 환호하는 청중에게 메인 프로그램만큼이나 다양한 앙코르곡 4곡을 과감하고 자유롭게 연주하며 독주회를 마쳤다.

이처럼 무터는 50세의 문턱에서도 자신의 과거 명반들과 실연(實演)으로 진검승부를 벌였다. 드뷔시ㆍ사라사테는 실연보다 음반의 손을 들어주려 했으나 연주자로서 무한한 존경심이 앞섰다.
그녀는 연주자로서 철저한 자기관리 이외에도 음악계와 사회에 기여하는 모습으로 나이가 들수록 더 많은 존경을 받는 예술인이다. 무터의 지속적인 변모는 일에 대한 사랑과 끊임없는 학습, 사회인으로서의 의무감에서 나오는 것이다.

어릴 적 ‘건강하기만 한 연주’라는 혹평은 이미 20대에 다양한 색채와 깊이를 더한 표현력으로 일축시킨 바 있다.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무터. 마치 낭만시대의 바이올리니스트 요아힘처럼 많은 현대 작품들이 헌정돼 그녀의 손에 의해 세계 초연되고 있다. 그녀는 동시대 음악에의 기여와 후학들을 위한 장학재단 운영, 그리고 올해만 벌써 여섯 번의 자선공연을 통해 자신이 받은 사랑을 사회에 환원하고 있다.
무터의 다음 공연이 벌써 기다려진다. 그녀의 변신은 ‘진행 중’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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