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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간고 출신’ 대법관 박병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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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다음 달 퇴임하는 이홍훈 대법관 후임으로 대법관에 임명 제청된 박병대 대전지방법원장이 6일 법원장실에서 지인들의 축하전화를 받으며 활짝 웃고 있다. [대전=프리랜서 김성태]

‘야간고 출신’ 판사가 대법관 후보자로 제청됐다.

이용훈 대법원장은 6일 박병대(54·사법연수원 12기) 대전지방법원장을 다음 달 1일 정년 퇴임하는 이홍훈 대법관의 후임으로 이명박 대통령에게 임명 제청했다. 이 대법원장은 “법원 안팎과 사회 각계각층 의견, 대법관제청자문위의 심의 결과 등을 토대로 법률지식과 판단력, 국민을 위한 봉사 자세, 도덕성 등에 대한 철저한 심사를 거쳐 박 원장을 제청했다”고 밝혔다. 박 원장은 고학으로 고교 야간부를 졸업한 지 36년 만에 우리나라에 14개밖에 없는 대법관 자리에 올라서게 됐다.

그는 전형적인 엘리트 판사의 길을 걸어왔다. 1979년 서울대 법대 4학년 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이어 사법연수원(12기)을 선두권으로 수료한 뒤 서울민사지법 판사로 출발해 시작부터 연수원 동기들을 앞서 나갔다. 법원행정처 송무국장·사법정책실장·기획조정실장 등 대법원 요직을 맡으며 사법 개혁을 주도했다. 부산고법 부장판사로 있던 2005년에는 한국법학원 법학논문상을 수상하는 등 민법에 정통한 이론가로도 유명하다.

 이처럼 화려한 그의 이력에서 가난 때문에 중학교도 포기하려 했던 시골 소년의 모습을 떠올리기는 쉽지 않다. 박 후보자의 고향은 경북 영주시 풍기읍이다. 그 시절 농가들이 그랬듯 그의 집도 가난했다. 게다가 그는 4남매 중 막내였다. 중학교도 겨우겨우 다닌 그에게 고등학교는 너무 먼 꿈이었다.

 똑똑한 그를 아꼈던 담임 선생님이 후원자를 수소문했다. 자녀가 없는 서울의 한 부부가 나섰다. 1972년 박 후보자는 서울 균명고(74년 환일고로 개칭) 야간부에 진학했다. 후원자 부부가 주선해 준 학교였다. 부부와 한집에 살면서 학교를 다녔다. 야간부를 택한 것은 일을 해서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이다. 낮에는 방송사에서 사환 일을 하며 돈을 벌었고, 밤엔 학교에 갔다. 박 후보자는 재수 끝에 서울대 법대에 합격했다. 환일고 출신 첫 서울대 법대 합격자였다.

 그와 대학 동기인 한 변호사는 “명문고 출신이 대부분인 서울대 법대에서 박 후보자는 이질적인 존재였지만 워낙 성격이 좋아 친구들이 정말 많았고 성적도 뛰어났다”고 말했다. 또 다른 대학 동기는 “밝은 성격이어서 집안 사정이 어렵다는 사실을 한동안 알지 못했다”며 “고생을 했기 때문인지 인품에 깊이가 있어 친구지만 존경하게 됐다”고 말했다.

 박 후보자는 판사가 된 뒤에도 후원자 부부를 부모님처럼 챙긴 것으로 알려졌다. 결혼식장에도 후원자 부부를 부모님과 나란히 모셨다고 한다. 한 부장판사는 “몇 해 전 (박 후보자에게) 아버님 같은 분이 돌아가셨다고 해서 상가에 갔더니 박 후보자가 상주 노릇을 하고 있었다”며 “자녀가 없었던 후원자 부모에게 끝까지 아들 역할을 한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부장판사는 “박 후보자가 막내아들이고 고교 때부터 고향을 떠나 살았지만 오랫동안 지병을 앓고 계신 노모를 모시고 살고 있다”며 “효심이 깊은 사람”이라고 했다.

 박 후보자가 야간고 출신이라는 사실은 법조계에서도 잘 알려지지 않았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박 후보자는 후배들이 무척 따르는 훌륭한 법관”이라며 “입지전적인 배경에만 시선이 몰려서 그의 훌륭한 장점들이 가려지지 않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박 후보자는 이날 기자와의 통화에서 “후보자 신분으로 언론에 입장을 밝히는 것은 적절하지 않은 것 같다”며 “성실한 자세로 인사청문회를 준비하겠다”고 말했다. 박 후보자는 이 대통령이 제청을 받아들여 국회에 임명 동의를 요구하면 인사청문회를 거쳐 새 대법관으로 임명된다.

글=구희령 기자
사진=프리랜서 김성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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