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5조 빚더미 LH 채권, 위험도는 전혀 없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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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은행 등 금융회사가 산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채권이 만약 부실화하면 대부분 정부가 물어주게 됐다.

금융감독원과 전국은행연합회는 “LH 채권의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상 위험가중치를 현행 20%에서 국채 수준인 0%로 낮추기로 합의했다”고 4일 밝혔다. 그리고 이 방안은 6월부터 적용키로 했다고 덧붙였다.

 이제까지는 금융기관이 LH 채권을 사면 일정 부분(위험가중치 20%) 위험자산으로 보고 이에 상응하는 비율만큼 자기자본으로 메워야 했다. 그러나 다음 달부터는 LH 채권을 정부가 100% 보증하므로 손해를 보거나 자기자본을 메워야 할 일이 없어진다.

 이는 지난달 6일 LH공사법 개정으로 정부가 손실을 메워주는 사업 대상을 보금자리주택·임대주택·산업단지 개발 외에 세종시·혁신도시까지 확대한 데 따른 조치라고 금감원 측은 설명했다. 국토해양부 관계자도 “사업 부실을 정부가 많이 떠안았기 때문에 그만큼 채권의 안전도가 높아졌다”고 주장했다. 비금융 공기업 가운데 BIS 위험가중치가 0%로 정해진 곳은 LH가 처음이다.

 정부와 금융권이 LH 채권 투자 위험성을 크게 낮추기로 한 것은 LH의 돈줄을 만들어 보금자리지구 등 주요 사업을 탈없이 추진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금융시장에서는 금융권은 물론 연기금 등의 LH 채권 투자가 늘 것으로 내다본다. 지금은 위험가중치가 20%여서 LH 채권에 100억원을 투자한 은행은 BIS 자기자본비율을 유지하기 위해 자기자본을 약 2억원(자기자본비율이 10%인 경우) 더 확충해야 하지만 다음 달부터 이런 문턱이 사라지는 것이다.

 우리자산운용 차문현 대표는 “시장에서 LH 채권의 신용도가 높아져 자금운용이 한결 쉬워질 것”이라고 평가했다. LH 재무처 윤복산 차장은 “이번 조치로 금융권은 물론 연기금 등의 투자 확대가 예상된다”고 기대했다. LH는 장기적으로는 채권 발행금리 인하 효과도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빚이 125조원에 이르는 LH의 채권 위험성을 낮춘 데 대한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정부가 LH의 부채를 근본적으로 해소하려는 고민은 하지 않고 보금자리지구 건설 등의 사업 차질을 우려해 지나치게 유동성 확보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금융권 관계자는 “만약 LH에 문제가 생기면 세금으로 메워야 한다는 소리”라며 “세종시·혁신도시건설 등 주요 사업을 차질 없이 추진하려면 무엇보다 부채를 조속히 해소해 LH의 경영을 정상화시켜야 한다”고 지적했다. 서울대 경영학과 안태식 교수 등 LH 재무개선특별위원회도 최근 보고서를 통해 “LH의 경영 정상화를 위해서는 국민주택기금으로 인한 부채 30조원의 출자 전환이나 공공토지 비축기금 등을 설치해 부채를 줄이는 근본 대책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황정일 기자

◆위험가중치=채권 발행기관(혹은 정부)에 대한 위험도(신용도)를 채권에 반영한 지수. 위험가중치가 높다는 것은 기관의 신용도가 낮아 해당 채권이 부실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다. 국내에서는 중앙정부 및 중앙은행이 0%이고, 공공기관은 업무에 따라 0~20%가 적용된다. 주택담보대출은 50%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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