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벤처투자 펀드 봇물 터졌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벤처기업 투자를 위한 전문 펀드가 잇따라 등장하고 있다. 창업투자사에서 중견 벤처업체.대기업.외국기업은 물론 정부까지 나서서 벤처 투자펀드를 경쟁적으로 만들고 있다.

펀드 규모도 수십억원에서 수천억원대로 커지는 양상이다. 이런 움직임은 국내 벤처산업을 활성화시켜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하는데 기폭제가 된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많지만, 한편에서는 펀드간의 과열 경쟁 및 '묻지마' 투자에 따른 부작용도 우려된다.

◇ 누가 얼마나 투자하나〓지난해 말 방한한 손정의 일본 소프트뱅크 사장이 국내에 투자전문 지주회사를 설립, 1억달러를 투자하겠다고 밝힌 게 기폭제가 됐다.

그동안 국내 벤처투자를 주도해 온 창투사들도 올해 사업계획을 짜면서 투자규모를 대폭 늘리고 공격적인 투자를 추진키로 했다.

국내 최대의 벤처캐피털인 한국종합기술금융(KTB)은 전체 자산의 20%가 넘는 4천5백억원을 벤처투자에 쏟아 부을 예정이다.

지난해보다 3배나 많은 규모다. 지난해 5백억원을 투자한 한국기술투자(KTI)와 최근 출범한 삼성벤처투자도 50~1백여개사에 각각 1천5백억원과 2천억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정보통신 전문 투자사인 한국IT벤처투자는 기관투자가들과 공동으로 오는 3월까지 3천억원 규모의 기술 펀드를 조성하고, 미래에셋도 오는 17일부터 2천억원 규모의 '파이오니어 벤처&코스닥 펀드' 를 판매한다.

성공한 중견 벤처기업과 정보기술(IT)업계의 움직임도 활발하다. 라이코스 코리아.한글과 컴퓨터 등 6개 중견 벤처기업은 최근 신생 벤처기업 투자를 위한 1천억원 규모의 지주회사 설립에 합의했다.

미래산업.인성정보.인터파크 등 중견 인터넷 업체나 한국통신.하나로통신.한솔텔레콤 등 통신 회사들은 개별적으로 펀드를 조성해 투자 대상 기업을 고르고 있다. 미래산업이 1천억원을, 인성정보가 3백억원을, 인터파크가 1백억원을 각각 벤처 투자에 쓸 방침이다.

하나로통신도 산은캐피탈 등 창투사와 함께 2천억원 규모의 투자펀드 지주회사를 만들어 올해에만 1백억원 이상을 벤처 기업에 지원한다.

국내 최대 통신업체인 한국통신은 올해 인터넷 사업에 투입되는 1조8백억원 중 일부를 벤처기업 투자에 쓰겠다고 밝혔다.

대기업과 금융권도 올해를 '인터넷 원년' 으로 선언하고, 핵심 사업의 하나로 벤처투자를 꼽고 있다.

삼성물산은 올해에만 인터넷 사업에 1천억원을 쏟아붓겠다고 밝혔다.이중 3백억원은 벤처펀드인 '골든게이트' 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한미은행도 5백억원 규모의 벤처 투자펀드를 만들어 인터넷.멀티미디어.정보통신.반도체 등 미래 유망산업 업체에 집중 투자한다.

◇ 문제는 없나〓벤처 펀드간의 경쟁이 심해지며 '묻지마' 식의 투자가 이뤄질 경우 벤처산업을 왜곡시킬 가능성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대우증권의 이종우 연구위원은 "옥석을 가리는 중장기적인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고 강조했다.

단순한 자금 지원에서 벗어나 해당 기업이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전방위적인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남궁석(南宮晳)정보통신부 장관은 "예컨대 벤처의 산실인 미국 실리콘밸리 등 주요 해외 거점에 지원센터를 설립해 국내용이 아닌 글로벌형 벤처기업을 키워야 한다" 고 설명했다.

정부가 규제 완화.세제 혜택 등 근본적인 정책을 내놓지 않은 채 부처별로 선심성 정책을 경쟁적으로 내놓는 것도 문제. 삼성물산의 현명관(玄明官)부회장은 "각종 규제 때문에 대기업의 벤처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다" 며 "벤처산업 활성화를 위한 정책 개선이 필요하다" 고 말했다.

이원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