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대학생, 대놓고 중동민주화 토론 벌이는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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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대학생과 지식인들 사이에 중동민주화 운동에 대한 토론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증언이 나왔다. 하지만 자유와 민주주의에 대한 욕망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투쟁을 막지 못한 원인을 분석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다. 초기에 제압하지 못한 이유를 따져 북한 사회를 더 강하게 통제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는 얘기다.

하지만 토론 과정에서 젊은이들은 무리없이 개혁과 개방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인식도 번지고 있다. 그래서 등 샤오핑(鄧小平)과 같은 인물의 등장을 고대한다고 한다.

최근 발행된 통일·외교·안보 전문지인 월간 'NK Vision'는 함경북도에 거주하는 50대 초반의 리선남(가명)씨를 인터뷰하는 과정에서 이런 증언이 나왔다고 보도했다.

북한에서 인텔리로 분류되는 리씨는 "대학생들과 지식인들 속에서는 중동 민주화에 대한 논의가 의외로 공개적이고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며 "외부세계에서 말하는 자유에 대한 지향이 아니라 오히려 그와는 정반대인 중동민주화투쟁이 일어나게 된 과정과 그 확산을 막아내지 못한 원인에 대한 분석에 관심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또 "지금 우리 북조선 인민들은 과거와 미래 사이에서 고민하고 있다"며 "아직 체험해보지 못한 자유세계에 대한 두려움, 엄청난 희생을 동반해야 하는 혁명에 대한 압박감으로부터 (벗어나) 개혁과 개발을 선택할 수 있는 소위 중국의 등소평 같은 인물을 원하고 있다"고 전했다.

유엔식량조사단이 북한을 방문해 조사를 하기에 앞서 북한당국이 주민들을 상대로 답변방식을 교육한다는 사실도 폭로했다. 인민반 회의를 소집해 유엔조사단이 던질만한 각종 질문 유형을 제시한 뒤 당국이 미리 준비한 답변을 하도록 조작한다는 것이다.

리씨는 "올해 2월 중순 유엔식량조사단이 함경북도 회령시와 경성군, 무산군, 온성군 지역을 돌아봤다"며 "식량조사단이 오기 전에 지역별로 인민반회의를 열어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 지시를 내렸다"고 증언했다. 그는 "한마디로 모든 것이 조작되었다"고 덧붙였다.

김기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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