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 민주화냐 국익이냐 … 오바마 ‘햄릿의 고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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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25일 낮(현지시간) 미국 백악관 브리핑룸. AP통신 기자가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에게 첫 질문을 던졌다. “왜 미국은 시리아와 리비아를 다르게 취급하는가. 버락 오바마(Barack Obama·사진) 대통령은 왜 무아마르 카다피(리비아 최고지도자)에게 했던,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는 말을 바샤르 알아사드(시리아 대통령)에겐 하지 않는가.” 이날 오전 백악관은 반정부 시위를 유혈 진압하고 있는 시리아 정부에 대해 강력한 제재를 검토 중이라고 밝혔을 뿐 알아사드의 하야조차 요구하지 않았다. 기자의 질문은 그 이유를 묻는 것이었다.

 하지만 카니 대변인은 “리비아는 카다피 정권이 잘 조직된 군사력으로 시민들을 공격하려는 독특한 상황”이라는 말을 반복하는 데 그쳤다. 시리아는 중동에서 이란과 함께 반미(反美)세력의 중심 국가다.

그럼에도 오바마가 이처럼 일관되지 못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은 연쇄적인 중동지역 급변사태를 맞아 대처방안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국의 원칙대로라면 민주화를 적극 지지해야 하지만 정권 붕괴 뒤 전개될 상황이 국익에 부합할지에 대한 확신이 없어 햄릿처럼 우유부단한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중동과 북아프리카 지역에 민주화가 확산되면서 미국의 대(對)중동정책을 근본적으로 수정해야 한다는 지적이 늘고 있다.

미국의 주이스라엘 대사를 지낸 마틴 인딕 브루킹스연구소 부소장은 “미국은 지금껏 이스라엘에 대한 지지와 석유의 자유로운 반·출입 보장이라는 국가 이익을 지키기 위해 중동에서 민주주의를 촉진시키려는 노력 대신 이 지역의 안정에 집중해왔다”고 말했다. 그래서 40여 년 동안 이 지역 독재자들을 지원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동지역 인구의 3분의 1을 차지하게 된 30대 미만 젊은이들이 최근 민주주의 혁명을 이끌면서 미국이 중시하던 안정이 깨지고 있다. 이집트·예멘 등 친미 성향 국가들과 시리아·리비아 등 반미 성향 국가들로 맞서던 두 축이 동시에 몰락했다.

이 과정에서 친미 국가들엔 개입과 타협으로, 반미 국가들엔 압력과 실력 행사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미국의 의도도 빗나가고 있다. 특히 중동정책의 핵심인 이집트에서 호스니 무바라크 대통령이 물러나면서 반(反)이스라엘 정권의 등장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브루킹스의 인딕 부소장은 “오바마 정부 당국자들이 중동지역에서 민주주의 개혁 촉진과 미국의 이익에 반하는 잠재적 불안정 대처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데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진단 했다.

워싱턴=김정욱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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