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사태법 폐지 하루 만에 ‘부자세습’ 알아사드 대학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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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알아사드 대통령

22~23일(현지시간) 이틀간 군이 시위대에 발포해 120여 명이 숨지는 최악의 유혈사태가 발생하면서 시리아의 부자세습 독재자 바샤르 알아사드 대통령은 더욱 궁지에 몰리게 됐다. 6주째 벌어지고 있는 반정부 시위를 가라앉히기 위해 시위대가 요구해온 비상사태법 폐지를 발표한 지 불과 하루 만에 대량 학살극을 벌였기 때문이다. 3월 중순 반정부 시위가 시작된 이래 하루 동안 발생한 희생자로는 가장 많은 규모다. 뉴욕 타임스는 “22일은 중동과 아프리카를 휩쓴 재스민 혁명 발생 이후 시민들이 가장 많은 피를 흘린 날 중 하나”라고 보도했다. 이로써 지금까지 군경의 강경진압으로 인한 사망자수는 300명을 넘었다고 현지 인권단체는 주장했다.

 이번 학살로 시리아 국민의 분노는 더 이상 통제할 수 없는 수준에 이르렀다는 분석이다. 알아사드로선 더 이상 쓸 카드가 없는 상황에 몰리고 있다. 실제로 정권의 유혈 진압에 항의해 의원 2명이 23일 의원직 사퇴의사를 밝혔다고 알자지라가 보도했다. 시위대에 대한 강경 탄압을 둘러싸고 정권 내 갈등이 빚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주말 학살극이 벌어진 직후 시위대와 인권단체들은 즉각 “알아사드 대통령이 비상사태법을 폐지한 지 하루 만에 시위대에 학살을 자행했다”는 성명을 내놓으며 분노하고 있다. 국제사회도 이에 동조해 알아사드 정권을 비난하면서 적극적인 개입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과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을 비롯해 프랑스·독일·러시아 등 국제사회는 폭력 진압의 중단 및 철저한 진상조사, 정치개혁 확대를 요구했다.

 로이터 통신 등은 시위가 확산되면서 알아사드 정권이 인권운동가 등 반정부 인사들에 대한 탄압을 강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수도 다마스쿠스 등 각지에 치안부대가 배치돼 광장과 도심 등의 통행을 제한하는 등 시리아 전역에 공포와 긴장이 감돌고 있다고 외신들은 전했다.

 앞서 22일 금요기도회를 맞아 전국적으로 벌어진 시위에서 국민의 분노가 폭발했다. 시위대는 이날 알아사드 정권 퇴진과 집권 바트당 독재 철폐, 그리고 양심수 석방을 촉구했다. 시위가 격화되자 군경은 최루가스를 뿌린 데 이어 실탄을 무차별 발포해 110여 명이 숨졌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국제인권단체 앰네스티 인터내셔널은 “7세 아이부터 70세 노인까지 수많은 사람이 희생됐다”고 전했다.

 시리아군은 23일 다마스쿠스 교외 등에서 전날 시위 참가 희생자의 장례행렬에 또다시 발포해 최소 13명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정현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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