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모습 지키며 현대화’ 서촌의 실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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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골목의 정취가 남아 있는 서촌이 서울의 ‘숨어 있던 보물’로 떠오르고 있다. 최근 마을 소식지 ‘서촌 라이프’를 창간한 설재우씨가 종로구 누하동을 내려다보고 있다. [안성식 기자]


우리의 전통을 보존하는 것과 현대적 개발을 하는 것은 양립할 수 없는 것일까. 경복궁 서편의 서촌(西村)이 시험대에 올랐다. 조선시대 중인문화의 중심지로 세종대왕이 태어난 터가 있는 서촌은 서울의 ‘숨겨진 보물’이다. 청와대 옆에 들어서 개발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곳. 그래서 660여 채의 한옥과 구불구불한 골목 등 옛 자취가 남아 있는 곳이다.

 지금 서촌에서도 일부 구역에서 아파트 건립이 추진되고 대형 프랜차이즈 커피숍이 속속 들어서는 등 개발이 시작되고 있다. 하지만 이곳에 사는 예술가와 다른 주민들은 전통을 보존하는 ‘서촌 만들기’를 주장하고 있다.

 “지도가 이렇게 예뻐도 돼요. 친구 주고 싶은데 몇 장 더 가져갈게요.”

 14일 서울 종로구 누하동 아트돌 스튜디오. 인형을 만드는 작은 공방 한편에 갓 찍어낸 ‘서촌공방지도’가 놓여 있었다. 찾아가기 어려운 곳을 표시해놓은 지도를 보고 손님들이 감탄을 연발했다. 스튜디오를 운영하는 박준서 작가는 “2~3년 전부터 예술가들이 이곳에 들어오기 시작했다”며 “주민과 작가들이 교류하는 예술촌을 만들고 싶어 작가들이 지도를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대형 커피숍이나 식당 등이 들어오는 걸 막을 수는 없다”면서도 “주민과 작가들이 함께 서촌만의 문화공간을 만들다 보면, 새로 들어오는 곳도 이곳에 어울리는 덩치와 모습으로 들어오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지난달 마을 소식지 ‘서촌라이프’를 창간한 설재우(31)씨는 “점점 땅값과 집값이 오르면서 자금력이 있는 곳이 아니면 들어오기 힘든 상황이 되어가고 있다”며 “서촌의 정체성을 지키는 개발 방식을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2008년 말 통인동에 문을 연 카페공방에서도 주민들의 제보를 받아 ‘서촌카페지도’를 만들어 10일부터 배포하기 시작했다. 카페공방의 임하림 매니저는 “숨어 있는 작고 사랑스러운 가게들을 주민들이 함께 공유하다 보면 자연스레 대형 커피숍에 잠식당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들의 ‘서촌 만들기’가 그리 쉬운 것만은 아니다. 대형 점포들이 들어와야 땅값이 뛰고 한옥을 고치기보다는 아파트를 지어 수익을 극대화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주민들도 있기 때문이다. 이미 옥인제1구역에선 한옥을 헐고 아파트 300가구를 짓는 재개발이 추진되고 있다. 지난 7일엔 ‘관리처분계획안’이 주민총회를 통과했다. 김원 광장건축환경연구소 대표는 “개성 없는 아파트를 짓는 옥인동은 서촌 지역에 있어 ‘원형 탈모증’ 같은 구역이 될 수 있다”며 “전통을 보존하면서도 현대적인 개발을 할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글=임주리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서촌=경복궁 서쪽과 인왕산 동쪽을 통틀어 ‘서촌’이라고 부른다. 면적은 58만2297㎡로 효자동·창성동·통인동· 누하동 등 15개 동이 포함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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