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족이 사망자의 홈피 관리’ … 디지털 유산 가이드라인 나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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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유산’을 다루는 방법에 대한 공식 가이드라인이 만들어질 전망이다.

 방송통신위원회는 14일 사망자가 남긴 인터넷 활동물을 적절하게 관리·보호하는 방안을 제시해주는 가이드라인의 제정을 검토하고 있다고 밝혔다. 고인이 생전에 운영하던 블로그, 미니홈피와 각종 웹사이트에 등록된 계정 등 이른바 디지털 유산이 대상이다.

 디지털 유산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커진 건 지난해 3월 천안함 침몰 사건으로 전사한 군인의 가족들이 인터넷 사업자에게 망자의 미니홈피 등을 관리할 수 있도록 접근권을 요구했지만 거부당하면서다. 당시 인터넷 업체들은 본인의 동의 없이 비밀번호 등 개인정보를 제3자에게 알려주지 못하게 금지한 ‘정보통신망 이용 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정보보호법)’을 이유로 유족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탤런트 고(故) 최진실씨 등 사망한 연예인들의 미니홈피가 운영되고 있지만 이는 ‘암묵적인 허용’ 때문이지 합법은 아닌 것으로 봤다.

 망자의 온라인 디지털 계정 관리에 관한 요구는 끊이지 않고 있다. 지난해 8월 한 달만 해도 SK커뮤니케이션즈에 죽은 사람의 미니홈피에 관한 문의가 82건이나 있었다. 이 중 ‘비밀번호를 알려달라’는 요청이 44건이었다. 미국에선 이라크 전쟁에 참전했다 전사한 해병의 가족이 포털업체인 야후를 상대로 소송을 벌여 ‘유족에게 e-메일 비밀번호를 알려줘야 한다’는 법원의 판결을 받은 사례가 있다.

 우리나라는 아직 디지털 유산에 대한 제도가 정비돼 있지 않다.

 지난해 7월 한나라당 박대해 의원이 고인의 친척 등이 블로그 등을 관리할 수 있도록 하는 정보보호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지만 논의에 진전이 없는 상황이다. 박 의원은 “사회적으로 디지털 유산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며 “망자의 블로그 등이 제대로 정리되지 않으면 일종의 ‘인터넷 공해’가 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일부 선진국에선 디지털 유산에 대한 제도를 법으로 명문화하고 있다. 독일의 경우 디지털 유산을 일반적인 상속 재산과 동일하게 취급하고, 금전적 가치가 있다고 인정될 경우 사후 10년간 디지털 유산에 대한 재산권을 행사할 수 있다. 오스트리아는 원칙적으로 디지털 유산을 제3자도 이용할 수 있도록 허가하고 있지만 유언을 통해 다른 사람의 이용을 막을 수도 있다.

 방통위는 사회적 변화에 발맞춰 디지털 유산의 개념을 정의하고, 민법·저작권법 등 관련 법령을 해석하는 연구를 5월 중 착수할 계획이다.

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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