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이시하라만 좋은 일 시킨 간 총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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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기
도쿄특파원

지난 10일 실시된 도쿄도지사 선거에서 4선에 성공한 이시하라 신타로(石原愼太郞·79)는 노회한 정치인이다. 지금은 도쿄도지사로 변신했지만 1968년부터 95년까지 27년간 자민당 국회의원을 했다. 후쿠다 다케오(福田赳夫) 내각인 77년에 환경장관을 했고,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 내각인 88년에는 운수대신을 지냈다. 게다가 그는 대학 재학 중이던 56년 일본 최고의 문학상인 아쿠타가와(芥川) 상을 받았다. 동생은 일본의 국민배우인 이시하라 유지로(石原裕次郎·87년 작고). 그만한 명함을 갖추기도 힘들다.

 그래도 그렇지 이해하기 힘든 일이다. 2·3위 후보의 표를 다 합한 수준의 260만 표를 얻어 4선에 쉽게 당선된 사실이 말이다. 그는 동일본 대지진의 와중에 “이번 쓰나미는 천벌(天罰)”이란 입에 담을 수 없는 말을 한 장본인 아닌가. 상식적으로 보면 괘씸죄로 낙선해야 마땅했다. 어디 그뿐인가. 그가 도지사 2기 때 “도쿄의 중소기업을 전면 지원하겠다”며 만든 은행은 경영파탄이 났다. 당시 그가 “도민세를 투입하게 되는 것 아니냐”고 질문한 기자를 향해 “유치하고 조잡한 주간지적 발상”이라고 몰아세웠던 장면을 또렷이 기억한다. 하지만 그는 임기 3기 때인 2008년 결국 이 은행에 도쿄 도민세 400억 엔을 쏟아부었다. 2008년에는 올핌픽 유치에 ‘올인’하며 예산을 흥청망청 썼지만 결국은 참패였다. 주민 리콜감이다.

 일본의 한 신문기자 친구는 “이시하라 4선의 수훈갑은 간 나오토(菅直人) 총리”라고 단언했다. 원래 이시하라는 이번 선거 출마를 포기하려 했다. 고령에다 자신의 인기가 사그라진 걸 알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간 총리가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헤매자 생각이 달라졌다. 노회한 정치인은 “간 정권만 공격하면 이긴다”는 생각을 굳혔다. 원전사태를 제대로 수습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간 정권의 혼미는 이시하라의 생각이 옳았음을 증명했다. 이시하라는 별다른 선거운동 한 번 하지 않고 “간 정권으로는 일본은 망한다”는 캐치프레이즈 하나로 압도적 승리를 얻어 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초동 대처를 잘못해 체르노빌 사고와 같은 수준인 ‘7등급’으로 끌고 간 간 정권이 보여 준 리더십 부재의 반사이익이다. 게다가 집권당인 민주당은 “패배 후 상황을 고려했다”며 이번 선거에 독자 후보조차 안 냈다. 남의 나라 흉보기는 좀 미안하지만 참으로 어처구니없다.

 이시하라 지사는 11일 당선 후 첫 출근길에 “민주당은 미숙한 인간들밖에 없다”며 껄껄 웃었다. 평소에도 “한·일 강제병합은 한국인이 원한 것” “독도에 특공대를 보내 탈환해야 한다”는 황당한 발언을 일삼던 그다. 앞으로 어떤 망언 퍼레이드가 나올지 두렵다. 그에게 날개를 달아 준 간 정권이 한심하고 야속할 뿐이다.

김현기 도쿄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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