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이세돌, 치밀한 준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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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본선 8강전>
○·구리 9단 ●·이세돌 9단

제11보(109~122)=백△의 삭감수에 대해 구리 9단은 ‘대실수’라고 말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국후의 얘기다. 이때만 해도 그런 느낌은 손톱만큼도 없었다. 그의 유일한 두려움은 우상 흑진이 정도 이상으로 부풀어 오르는 것인데 백△가 제때 견제하고 나섰으니 승부는 거의 결정된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사실 그 믿음은 아무 하자가 없다. 지금 이세돌 9단의 움직임을 보더라도 그가 우상 흑진으로 승부할 것이라는 느낌은 거의 감지되지 않는다.

 109로부터 121까지 이세돌은 계속해 좌변 백 집을 압박하고 깎았다. 이 움직임은 대마의 눈을 확보하려는 몸부림 같기도 했고 또 좌상에서 수를 내보려는 시도로도 비쳐진다. 검토진도 잠시 손을 놓고 모니터만 보고 있다. 우상을 키우려면 A에 붙여야 하는데 117은 방향이 다르다. 혹시 ‘참고도’처럼 살려내는 수를 보는 것일까. 물론 안 되는 수다. 설령 5까지 기어 넘어가도 백이 빵빵 때려내면 우상 흑진이 다 죽어버린다. 유일한 희망이 사라진다.

 얼핏 갈팡질팡하는 것 같은 109~121의 수순은 사실은 치밀한 준비공작이었음이 잠시 후 드러났다. 122에 이르러 흑 대마는 어느 정도 눈이 확보됐다. 확실하지는 않지만 이젠 쉽게 죽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비로소 ‘집’을 지을 때가 왔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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