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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에 묻은 돈’ 밤새 파보니 100억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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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전북 김제시 금구면 이모(53)씨의 밭에 묻혀 있던 김치통에서 꺼낸 5만원권.

지난 8일 중장비 기사 안모(52·전북 김제시 금구면)씨는 “땡전 한 푼 못 봤는데 도둑놈으로 몰려 억울하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안씨는 지난 2월에 이모(53)씨의 밭에서 매화 나무를 옮기는 작업을 했다. 그런데 작업 후에 이씨가 “밭에 묻어 둔 돈 4억원을 가져가지 않았느냐”며 안씨를 추궁했다. 도둑으로 몰린 안씨가 견디다 못해 경찰에 신고한 것이다. <본지 4월 9일자 19면>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이씨의 진술이 오락가락하는 점을 이상하게 여겨 집중 추궁했다. 그 결과 이씨의 처남 이모(44·수감 중)씨가 불법 인터넷 도박 사이트를 운영해 챙긴 돈을 매형인 이씨에게 맡겼고, 이씨가 이 돈을 자신의 밭에 묻었다가 일부 꺼내 사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처남 이씨는 2009년 4월에 매형에게 돈을 보관해달라고 부탁했다. 처남은 그해 11월 도박장을 개장한 혐의로 구속됐다. 그는 1년6개월의 형을 선고받고 수감됐으며, 다음달 출소 예정이다. 뭉칫돈을 어떻게 숨길지 고민한 이씨는 김치냉장고 통 수십 개를 구입했다. 돈을 5만원권으로 바꿔 통 하나에 3억~4억원씩 담았다. 이 통을 금구면에 있는 자신의 마늘밭에 묻었다.

 욕심이 생긴 이씨는 지난 2일 밭에서 김치통 1개를 꺼내 통 속에 든 4억원 중 2억9000만원을 썼다. 하지만 처남의 출소일이 다가오자 이씨는 걱정에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이씨는 고민 끝에 지난 2월 자신의 밭에서 일했던 중장비 기사 안씨를 떠올렸다. 당시 안씨는 매화 나무를 옮기는 작업을 했다. 돈을 도난당한 것처럼 꾸며 안씨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계략을 짰다. 이씨는 “충남 조직폭력배 자금을 밭에 묻었는데 없어졌다. 작업 중 보지 못했느냐”고 안씨를 추궁했다. 안씨는 견디다 못해 “이씨가 나를 도둑놈으로 몬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신고를 받은 후 곧바로 밭 주변을 수색해 비닐로 싸인 통에서 3억원을 발견했다. 경찰은 갑작스러운 거액 발견 후 진술이 석연치 않은 이씨와 이씨 가족들을 추궁해 9일 새벽 이씨 아들(25)의 렌터카에서 10억원을, 아파트 금고에서 1억1500만원을 추가로 찾아냈다. 이씨는 결국 자신의 자작극이라고 실토할 수밖에 없었다. 경찰은 포클레인을 동원해 밭을 팠다. 처음에는 17개의 김치통이 발견됐다. 27억원이었다.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파면 팔수록 김치통이 계속 나왔다. 밤늦게까지 작업한 결과 70억원 정도의 돈을 찾았다. 경찰 관계자는 “아침이면 돈이 100억원 가까이 될 듯하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씨를 범죄수익은닉 규제 등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체포하고 남은 돈을 압수해 국고에 넘기기로 했다.

김제=장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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