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드 바닥에 금속 붙여 러프 탈출 쉽게 … 개발자 톰 크로 7억 달러 ‘잭팟’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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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호 20면

1961년 호주 아마추어 골프 챔피언십에서 우승한 톰 크로는 클럽에 관심이 많았다. 던롭의 판매사원으로 유럽을 돌아다니기도 하고 호주의 용품회사에서 잠시 일을 하기도 했다. 73년 크로는 자신의 능력만 믿고 미국 캘리포니아로 건너갔다. 그는 비싼 클럽을 만들어 당시 경기가 매우 좋았던 일본에 팔 생각이었다. 하지만 잘 안 됐다.

성호준의 골프 진품명품 <7> 첫 유틸리티 클럽 배플러

크로는 사업 초창기에 비용 절감과 라이벌 업체들의 견제를 피해 한국에 우드의 헤드용 퍼시먼(감나무)을 주문했다가 낭패를 본 적도 있다고 한다. 4000개의 헤드를 받았는데 나무 재질은 아주 좋았지만 가공 기술이 엉망이어서 쓸 만한 것은 16개밖에 없었다고 한다.

자본이 없었던 크로는 어떻게 회사를 발전시켜야 할지 고민하다가 문득 시드니의 용품회사에서 일할 때 기억이 떠올랐다. 롱아이언보다 우드를 잘 쓰는 선수가 있었는데 러프에서도 쓸 수 있는 우드를 원했다. 회사에서는 무거운 금속을 헤드 바닥에 붙인 클럽을 만들어줬다. 그런데 금속과 나무의 원심력 차이가 너무 커서 클럽은 자주 부서졌다. 이를 막기 위해 테두리를 플라스틱으로 봉했는데 성능은 괜찮았지만 리딩에지가 너무 날카로워서 가끔은 잔디 깊숙이 박히곤 했다.

크로는 이 클럽을 개선하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는 샌드 웨지(당시엔 샌드 아이언)와 피칭 웨지의 차이를 생각했다. 뛰어난 골퍼였던 크로는 깊은 러프에서는 피칭 웨지가 아니라 샌드 웨지를 썼다. 피칭 웨지의 날카로운 리딩 에지가 풀에 박히곤 해서다. 샌드 웨지는 벙커샷을 할 때처럼 러프에서도 리딩 에지가 아니라 바닥이 먼저 땅에 닿는다. 진 사라센이 헤드 바닥에 바운스를 만들어 벙커샷을 쉽게 한 원리(지난주 골프 진품명품에서 소개)를 크로가 러프에서 쓰는 클럽에 적용한 셈이다.

그는 퍼시먼보다 강한 합판으로 헤드를 만들고 밑바닥에 금속판을 붙였다. 금속이 너무 무거워 클럽의 밸런스가 맞지 않았다. 크로는 꼭 필요하지 않은 금속을 떼내기 시작했다. 결국 남은 건 힐과 토 부분에 철도 레일 같은 두 개의 활주부였다. 이 활주부는 리딩 에지가 땅에 닿지 못하게 만들어졌을뿐더러 획기적으로 저항을 줄이는 역할을 했다.

이 유틸리티 클럽을 배피(baffy)에서 이름을 따 배플러(baffler)라고 붙였다. 배피는 클럽이 번호를 갖기 전에 현재의 4번 우드 정도의 로프트를 가진 우드를 지칭하는 말이었다. 일반적으로 높이 띄우는 샷을 할 때 이 클럽을 썼다. 새로 만든 유틸리티는 로프트각이 23도로 7번 우드 정도의 각이었지만 이름은 이렇게 지었다. 크로는 “깊은 러프에서 치는 샷이 너를 화나게(baffle) 만드는가. (높이 뜨는) 배플러를 써라”고 광고했다.

배플러는 러프뿐 아니라 진흙 같은 나쁜 라이에서도 여러모로 쓰였다. 시멘트 같은 딱딱한 라이에서도 사용이 가능했다. 크로는 올랜도에서 열린 PGA 용품쇼에 배플러를 가져갔다. 그는 주차장에서 프로들에게 “이 클럽으로 샷을 하면 바로 앞에 있는 캐딜락을 넘길 수 있다”고 하며 직접 시범을 보였다. 프로들은 그 샷에 놀라 클럽을 샀다. 이 기술을 이용한 다른 우드와 아이언도 만들었다. 이후 4년간 250만 개의 배플러가 팔렸다. 73년 6만 달러를 가지고 미국으로 건너간 그는 96년 7억5000만 달러에 회사를 팔았다.

배플러는 최초의 유틸리티 클럽이다. 하이브리드 클럽은 아니지만 테일러메이드에서 러프에 들어갔을 때 구해준다는 뜻으로 만든 레스큐(Rescue:구조)의 선조인 것만은 확실하다.
코브라에서 2011년 출시한 배플러(사진)는 헤드가 모두 금속으로 되어 있지만 과거의 전통을 기념하여 바닥에 기찻길 같은 두 선을 그려놨다. 이름도 배플러 레일(rail)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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