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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리포트] 캠코 보유한 PF 사업장 르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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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캠코가 저축은행으로부터 인수한 서울 청담동 PF 사업장. 시행사가 고층 아파트로 개발하려고 300억원을 대출받았다가 사업이 중단됐다.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박준혁 과장은 요즘 일주일에 두 번씩 지방 출장을 다닌다. 저축은행으로부터 사들인 부실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장을 둘러보기 위해서다. 지난달 29일엔 경주 성동동에 있는 상가를 다녀왔다. 5년째 방치된 유령상가다. 3층 건물이 완성되고 내부 인테리어 공사를 하던 중이었지만 분양이 안 돼 시행사가 무너졌다. 저축은행들이 빌려준 대출 채권 30억원은 캠코로 넘어왔다. 박 과장은 “주택가에 위치해 상가로는 개발이 어렵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며 “부동산 거품이 심할 때 무리한 대출이 이뤄진 사례”라고 말했다.

현재 캠코는 저축은행으로부터 인수한 전국 338개 PF 사업장에 대한 전수조사를 하고 있다. 현장을 다니는 직원들로부터 “부동산 경기 탓도 있지만 사업성 평가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대출이 대부분”이라는 보고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달 30일 청담동 PF 사업장을 방문하는 박 과장을 기자가 동행했다. 고급 주택가 한가운데 자리 잡은 2000㎡ 규모의 공터는 펜스로 둘러싸인 채 잡초가 무성했다. 원래 번호판 제작소와 작은 빌라가 있던 땅이었다. 부동산 호황기이던 2007년 한 건설사가 이 땅과 인근 아파트 2개 동을 함께 사들여 한강 조망이 가능한 고층 아파트를 지으려 했다. 사업계획서를 보고 저축은행 10곳이 달려들어 300억원의 대출이 이뤄졌다. 하지만 아파트 입주민 보상부터 문제가 생겼다. 보상금이 적다며 이주를 거부한 주민이 많았다. 이들에게 시가의 두 배에 가까운 14억∼15억원(115㎡ 기준)의 보상을 약속하고 사업을 강행하려던 즈음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졌다. 돈줄이 끊긴 시행사가 무너졌다. 인근 부동산업자는 “아파트 입주민 100%의 동의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원래부터 쉽지 않은 사업이었다”며 “이주했던 아파트 주민들이 다시 돌아오고 있어 사업 재개는 어려울 것 같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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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축은행들의 PF 사업장 전망이 밝지 않은 것은 대출 대부분이 사업 초기 단계에서 이뤄졌기 때문이다. 영국 웨일스에도 캠코가 보유한 사업장이 있다. 웨일스 서남쪽 스원지(Swansea)라는 도시의 재개발사업에 한국의 한 건축회사가 시행사로 나섰다. 한국식 온돌방을 갖춘 아파트 10개 동을 건설하고, 30층 규모의 주상복합을 짓는 계획이었다. 저축은행 세 곳과 부동산 펀드 한 곳이 1차로 220억원을 대출해 줬다. 하지만 이 사업은 시공사도 정하지 못한 채 2007년 금융위기로 중단됐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은행들이 토지 매입이 어느 정도 이뤄지고 주민 동의나 인허가를 마친 사업장에 대출해 준 반면 저축은행들은 은행 대출이 가능할 때까지 필요한 돈을 꿔 주는 브리지론을 제공하다 문제가 생겼다”며 “이런 구조 때문에 사업 재개가 쉽지 않다”고 강조했다.

 캠코는 저축은행들을 돕기 위해 환매조건부 계약을 통해 PF 채권을 인수했다. 장부가의 70% 정도로 사들인 뒤 3년 후 다시 같은 가격에 저축은행에 돌려주는 방식이다. 만일 그전에 사업장이 정상화돼 매입가보다 높은 가격에 팔리면 차익은 저축은행에 돌려줘야 한다. 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금융권의 공통된 진단이다.

 캠코 보유 338개 PF 사업장 중 서울에 있는 곳은 9%에 불과하다. 대부분을 차지하는 지방사업장의 정상화 가능성은 훨씬 작다. 분양이 예정된 곳은 청주와 거제의 아파트 2곳. 26개 사업장은 매각을 추진 중이고 채권단 차원에서 자율 워크아웃(회생절차)을 추진 중인 사업장이 62개라고 캠코는 밝혔다.

 캠코 보유 물건 중 사업성이 뛰어난 곳을 추천받아 지난달 29일 현장을 가 봤다. 송파구 석촌동 24번지. 석촌호수를 사이로 롯데월드를 마주 보고 있는 이 땅(2796㎡)은 4년 가까이 방치돼 있다. 땅을 싸고 있는 펜스 밑으로 도둑고양이들만 드나들고 있다. 2007년 모텔 부지 등을 부동산 시행사가 396㎡(120평대) 이상의 초고급 아파트로 개발하겠다며 사들였다. 토지 매입을 완료하고 인허가 절차를 밟던 중 시공사(신구건설)가 2008년 4월 부도로 넘어지면서 사업은 중단됐다. 10여 개 저축은행이 대출해 준 700억원의 채권은 묶였다. 현장에서 만난 부동산업자는 “토지 매입가 등을 따지면 3.3㎡당 3500만원 이상을 받아야 하는데 바로 옆 인근 주상복합 시세가 2500만원도 채 안 된다”며 “이런 부동산 경기라면 위험을 무릅쓰고 뛰어들 시공사 찾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사업장의 채권단 일원인 한 저축은행 관계자도 “최근 저축은행에 대한 대출 규제로 건설사들에 대한 대출 여력이 더 약해지고 있어 (상황이) 쉽지 않다”고 털어놨다.

 이런 가운데 캠코가 보유한 저축은행의 PF 부실 채권은 올해 안에 3000억원, 내년 3월에는 1조200억원의 상환 만기가 돌아온다. 지난해 사들인 4조4000억원 규모의 PF 만기는 2013년 6월이다. 저축은행 중앙회 관계자는 “돌아오는 부실 채권을 되살 여력이 없는 저축은행들로선 큰 부담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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