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후〉로 '오늘의 우리만화'상 수상한 윤태호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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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수대교가 무너졌을 때 TV로 본 그 광경은 한 마디로 경악 그 자체였어요. 마치 컴퓨터 그래픽을 이용해 다리 한가운데 부분을 감쪽같이 지워놓은 것 같은 묘한 어색함…. '저런 일이 도대체 가능하기나 한 일일까, 저건 만화다' 이런 생각이 들었어요."

건물 붕괴사고로 아버지를 잃은 소년이 사회의 부조리와 모순에 분노를 느끼고 기득권층에 무차별 테러를 가하게 된다는 내용의 SF물 〈야후〉로 문화관광부의 '오늘의 우리만화' (제4회)상을 수상한 만화가 윤태호(30). 그는 "그때 내가 느꼈던 황당함과 분노가 나만의 것이 아닐 거라는 짐작에서 사람들의 무신경과 도덕 불감증을 꼬집는 작품을 구상하게 됐다" 고 설명한다.

〈야후〉는 걸리버 여행기 네번째 이야기인 말들의 나라에서 말들이 인간을 두고 부르는 표현. 새 작품 제목을 찾으려 사전을 뒤지다 이 단어가 갖는 의미를 알게 됐다.

"하늘을 날아다니는 오토바이를 타고 테러를 저지르는 주인공을 보면서 작품 속의 신문기자가 '하늘을 날아 다니는 야후같다'고 말을 합니다. 야후는 '짐승같은 인간' 이라는 뜻이지요. 사회가 발달하면 할수록 귀하게 여겨야 할 가치가 있음에도 이를 망각하고 성장 제일주의로 치닫는 사람들의 행태에 딱 어울리는 표현이라고 할 수 있죠."

지난해 만화잡지 '부킹' 창간호부터 연재를 시작, 3권까지 출간된 '야후' 는 무너진 건물에 깔린 아버지의 압사 장면 등 직설적인 묘사로 초반부터 독자들 사이에서 격론의 대상이 됐다.
또 SF라는 장르가 미래의 시점을 가상하는 것이 통상적인데 비해 이 만화는 아현동 가스폭발 사고와 삼풍 백화점.성수대교 붕괴 등 한국 현대사의 실제 사건을 자신이 구상한 줄거리 안에 적절히 배치하는 새로운 형식을 추구한다.

만화평론가 박인하씨는 "만화가들이 보통 부담스러워하는 사회성 짙은 소재도 만화적 상상력으로 얼마든지 극화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 작품" 이라며 "실재하는 역사적 사건에 일부분의 가정을 가미해 스토리를 전개한다는 점에서 복거일의 소설 〈비명(碑銘)을 찾아서〉를 연상케한다" 고 평한다.

그가 사회적 소재에 관심을 기울이게 된 것은 또래들보다 생의 어두운 면에 일찍 접하게 된 개인사와도 무관치 않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 사업이 망하는 바람에 "짐을 실은 트럭이 고속도로를 달리고 있을 때까지도 이사갈 집이 정해지지도 않은 상황" 을 겪기도 했고, 만화를 그리겠다고 무작정 상경한 후 갈 곳이 없어 지하철 역과 길거리에서 노숙을 하기도 했다.
그는 "지방 출신이라 그런지 서울에 왔을 때 목격한 사회 현상을 꽤나 예민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고 말한다.

"아직 도입부 정도밖에 나오지 않았는데 상을 받게 돼 어리둥절하다" 고 수상 소감을 밝힌 그는 허영만.조운학 등 대가들의 문하생을 거쳐 지금까지 〈혼자 자는 남편〉 〈연씨별곡〉등을 발표했다.
〈야후〉는 20권으로 마무리할 계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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