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리포트] “정신·육체적 고통, 인지하는 뇌 영역은 똑같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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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강일구]

인간의 뇌는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실연을 당했을 때 겪는 ‘정신적 고통’과 물리적인 힘에 의한 ‘육체적인 고통’을 구분하지 못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전혀 다른 종류의 고통이라도 이를 인지하는 뇌 영역은 동일하다는 것이다.

 미국 컬럼비아대 에드워드 스미스 박사팀은 미국 뉴욕지역에 거주하면서 최근 6개월 안에 실연 경험이 있는 남성 19명, 여성 21명을 대상으로 사람들이 정신·육체적 고통을 받았을 때 뇌의 어떤 부분이 활성화되는지 분석했다. 측정도구는 기능성 자기공명영상(fMRI) 기기를 사용했다.

 먼저 연구진은 피부가 상하지 않을 정도의 뜨거운 물과 미지근한 물을 준비했다. 그리고 이를 왼쪽 팔에 각각 부었을 때의 반응을 측정했다. 그 결과 뜨거운 물을 부었을 때 육체적 자극 처리와 관련된 ‘2차 몸 감각피질’ 부분이 활성화한 것을 관찰할 수 있었다.

 다음으로 연구진은 대상자에게 친한 친구의 사진과 과거 애인의 사진을 각각 보여줬다. 연구 결과 과거 애인의 사진을 봤을 때와 육체적 고통이 가해졌을 때 활성화되는 뇌 영역이 동일하게 활성화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스미스 박사는 “사람이 정신·육체적 고통을 피하기 위한 노력을 할 때 뇌에서 공통된 부분이 활성화하는 것은 이미 알려져 있었다”며 “그러나 고통을 느끼는 영역도 공유된다는 것을 보여준 것은 이번 연구가 처음”이라고 말했다.

 연구진은 일반적인 수준의 상심이나 좌절이 아니라 두려움·슬픔·분노와 같이 복합적인 아픔에 의한 정신적 고통일 때만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 같다고 추정했다.

 실제 의학계에서는 심리적 요인이나 갈등에 의해 신체적인 형태의 장애가 나타나는 질환을 ‘신체형 장애’라고 부른다. 응급실에 교통사고 환자가 왔을 때 보호자인 부모는 흔히 졸도하는데 이때 여러 가지 신체적인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가천의과학대학교 뇌과학연구소 김영보 교수는 “이번 연구는 상대방에게 거절당했을 때 나타나는 사회적 고통의 경험이 어떻게 다양한 신체적 고통으로 이어지는지를 새로운 시각으로 보여줬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번 연구 내용이 운동이나 명상을 통해 스트레스를 해결하거나 통증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하는 데 활용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번 연구결과는 미국국립과학원회보(PNAS) 최신호에 게재됐다.

권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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