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 혁명의 역설 … 소통 수단 발달할수록 갈등·불화 증폭”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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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2호 03면

볼통에게 소통은 “공통점을 공유하고 사람들을 갈라놓는 차이점을 관리하는 것”이다. 그래서 소통의 문제는 전쟁과 평화의 문제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볼통은 역설한다. 김도훈 인턴기자

소통은 리더에게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자질 중 하나다. 다른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소통 능력이 부족하면 성공하기 어렵다. ‘커뮤니케이터(communicator)’란 별명을 가진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은 소통 능력 하나로 성공한 대통령이 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레이건은 핵심을 꿰뚫는 촌철살인(寸鐵殺人) 같은 한마디로 대중과 소통할 줄 아는 ‘원 라이너(one-liner)’였다.

중앙SUNDAY가 만난 사람 소통학 창시자 도미니크 볼통

소통은 개인의 행복과 불행에도 영향을 미친다. 소통이 잘 되는 커플은 행복하지만 그렇지 않은 커플은 불화와 갈등을 겪는다. 조직과 사회도 마찬가지다.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조직은 실패할 확률이 높다.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아랍권의 시민혁명은 사회적 소통 불량의 당연한 결과다. 국가 사이의 소통이 고장 나면 전쟁으로 발전한다.

도미니크 볼통(Dominique Woltonㆍ63)은 30여 년간 소통에 관한 학문적 연구에 매달려온 프랑스의 석학이다. 그는 언론학의 커뮤니케이션 이론에 수학·컴퓨터공학·사회학·생물학·인류학 등을 접목시킨 학제적(學際的) 연구를 통해 ‘소통학(Science de la communication)’을 과학의 영역으로 끌어올렸다. 소통학의 창시자라고 할 수 있다. 저서 정보 제공이 소통은 아니다(Informer n’est pas communiquer)의 한국어판(불통의 시대, 소통을 읽다ㆍ살림) 출간을 계기로 최근 방한한 그를 만났다.

-동일본 대지진과 관련해 일본 정부의 리더십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것도 결국 소통의 문제인가.
“일본의 위기에서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정보 혁명의 모순이다. 정보기술(IT)의 발전으로 모든 정보와 메시지가 실시간으로 유통되고 있다. 그로 인해 소통이 촉진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갈등과 불화가 증폭되고 있는 것이다. 정보의 유통 속도와 경쟁할 수 있는 민주적인 정부는 지구상에 없다. 정보는 순식간에 퍼지지만 정부가 어떤 결정을 내리고 행동을 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후쿠시마 원전(原電)의 폭발 장면이 인터넷과 트위터를 통해 실시간으로 전파되고, TV 화면에 같은 장면이 수백 번씩 반복되면 ‘정부는 왜 아무 일도 안 하고 있냐’ ‘뭘 숨기고 있는 게 아니냐’란 비판과 의심이 나올 수밖에 없다. 위기 상황에서 정치 지도자와 정부는 여론의 가장 손쉬운 희생양이 된다. 소통 기술의 발전이 실제적인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기보다는 혼란과 불신을 가중시키는 역설(逆說)을 일본의 위기에서 보고 있다.”

-그럴수록 정부의 소통 능력이 중요한 것 아닌가.
“물론이다. 그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주류 언론의 역할이다. 인터넷과 스마트폰만 있으면 누구나 기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 그처럼 순진하고 위험한 발상도 없다. 언제 어디서나 거의 공짜로 모든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세상이 될수록 정보를 분류하고, 우선순위를 매기고, 검증하고, 해석하고, 추려내고, 비판하는 주류 언론 기자의 역할이 중요하다. 사실에 근거한 비판 능력이라는 여과 장치를 거치지 않은 정보는 오히려 소통을 위협할 수 있다.”

-기자라고 다 같은 기자는 아니지 않은가.
“오늘날의 기자는 세 가지 유형으로 분류해 볼 수 있다. 첫째 유명인사가 된 기자들이다. 그들은 미디어에 대한 접근을 폭군처럼 조종하는 그룹이다. 두 번째 그룹은 다수의 ‘중산층 기자’들이다. 별다른 유명세는 갖고 있지 않지만 온건하고 직업적 의무감에 충실한 부류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 부류는 인터넷 저널리즘이라는 통탄할 만한 근무 조건을 받아들이는 기자들이다. 내가 기대를 거는 것은 중산층 기자들이다.”

-정보 혁명의 시대에 ‘중산층 기자’들이 살아남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기자라는 직업의 정당성은 대중의 신뢰에 달려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또 현장과 유리된 ‘컴퓨터 언론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정치·경제적 압력에 저항하는 법을 배움으로써 권력과 적당한 거리를 유지할 수 있어야 한다. 아울러 연예인화한 지식인이 신문 지면이나 전파를 점령해 모든 것에 대해 의견을 개진하고, 다른 사람들의 판단 기준이 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

-아랍권의 시민혁명에서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같은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는 주장에 동의하는가.
“동의하지 않는다. SNS는 가속기의 역할을 했을 뿐이다. SNS보다 알자지라나 알아라비아 같은 위성이나 케이블 TV의 역할이 훨씬 컸다. SNS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은 전체를 보지 못하고, 일부만 보고 하는 얘기다. ‘아랍의 봄’을 실제로 만들어낸 것은 아랍의 남녀노소다. 서로 연락을 주고받으며 이들이 함께 거리로 쏟아져 나오게 한 것은 트위터나 페이스북보다는 전화나 휴대전화였다.”

-정치적 소통 능력의 요체는 무엇인가. 말을 잘하는 것인가.
“정치적 소통이라고 하면 흔히 말을 잘하고, 멋있게 보이는 등 퍼포먼스를 생각하는데 그처럼 어리석은 생각도 없다. 정치적 소통의 핵심은 역사적 맥락을 이해하고, 그에 걸맞은 언행을 하는 것이다. 레이건이 훌륭한 소통가로 평가받는 것은 그 시대 미국 사회가 필요로 하는 시대 정신을 말과 행동으로 잘 표현했기 때문이다. 10년 전이나 10년 후였다면 똑같은 평가를 못 받았을 것이다.”

-그래도 정치 지도자라면 기자회견을 가급적 많이 하는 게 좋은 것 아닌가.
“기자회견은 일종의 마케팅으로, 정치적 소통 행위의 10%에 불과하다. 정치적 소통의 세 축은 정치 행위자와 이를 쳐다보고 관찰하는 여론, 그리고 미디어다.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이 세 축이 균형을 이뤄야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나라가 불균형 상태다. 미디어 쪽에 너무 많은 힘이 쏠려 있다. 미디어가 정치 지도자를 비판하기는 쉽다. 미디어는 비판하는 것에서 그치지만 대통령 같은 정치 지도자는 결정을 해야 한다. 군 통수권자로서의 대통령은 전쟁과 평화를 책임지는 사람이다. 미디어를 통해 대중은 정치 지도자와 늘 접하기 때문에 심지어 같은 침실에서 잠도 잘 수 있을 것같은 착각에 빠지지만 이것이 정치적 소통에는 오히려 위험할 수 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의 정치적 소통 능력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오바마는 자신이 대통령이 된 이유와 대통령으로서 해야 할 일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 애쓰고 있다. 지금은 좋은 평가를 못 받고 있지만 나중에는 매우 지적인 대통령이었다는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사르코지는 초기에 시민들과 거리를 줄이는 것이 소통을 잘하는 것이라고 착각해 그 거리를 너무 좁혀 놓았다. 그것이 실수였다는 걸 깨닫고 지금은 다시 거리를 두려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우왕좌왕 하는 사이에 지지율이 폭락했다.”

-한국의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은 세계 최고다. 그럼에도 소통 부재는 한국 사회의 심각한 문제다. 뭐가 문제인가.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직접 말을 하고 만지고 보는 것이 중요하다. 모니터나 휴대전화로 하는 소통은 빈약한 소통일뿐이다. 진정한 소통은 컴퓨터를 끄고 직접 만나 대화를 할 때 시작된다. ‘인터랙티브한 고독’에 주의해야 한다. 인터넷을 하고, 트위터를 하면 인터랙티브한 것처럼 느끼지만 실제로는 각자 혼자서 하는 것 아닌가. 인터넷 보급률이 낮은 나라에서 소통이 더 잘 되는 경우가 많다. 가족이나 친구, 남녀 간에 거리에서 더 많은 소통이 이루어진다.”

-한국 사회를 위해 한마디 한다면.
“한국은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다. 과학기술 면에서도 대단한 발전을 이룩했다. 한국은 세계를 향해 더 많은 말을 해야 하는데 안 하고 있다. 삼성이나 LG가 한국 기업인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한국은 자신감을 갖고 좀 더 공격적인 자세로 한국의 성취를 세계에 알려야 한다. 중국이나 일본과 다른 한국의 독특한 문화를 널리 알리는 것도 중요하다. 통일이 되면 한국은 7500만 인구를 갖게 된다. 세계에는 중국이나 미국, 인도, 러시아 같은 강대국만 있는 게 아니다. 한국이나 프랑스처럼 상대적으로 작지만 세계의 다양성에 기여할 수 있는 나라도 있다.”

-인터넷에는 유용한 정보도 많지만 쓰레기 같은 정보도 많다. 왜곡과 선동도 많다. 적절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있다. 동의하는가.
“그렇다. 인터넷에는 최악과 최고가 공존하고 있다. 소통을 통한 공존을 위해서는 범세계적 차원의 일정한 규제가 필요하다.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우려가 있지만 침해하기 보다는 오히려 보호하는 방법이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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