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경만 8명인 수사팀 … “수사해달라고 줄 섰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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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서울 중랑경찰서 경제3팀 여경 8명이 화이팅을 외치고 있다. 왼쪽부터 황경희 경감, 김정희 경위, 권미정 순경, 박은정 경사, 전윤숙 경위, 박애화·지상은·김희경 경장. [변선구 기자]


지난달 8일 서울 중랑경찰서 경제3팀 김희경(34·여) 경장은 면목동 권모(74) 할머니 집을 찾았다. 중풍을 앓아 거동이 불편한 권씨가 “만병통치약이라는 말에 속아 싸구려 한약재를 250만원에 샀다”며 경찰에 고소한 날이었다. 1시간이 넘게 사정을 호소하던 권씨는 “어제 집에 찾아온 판매상에게 우유까지 대접했다”며 억울해 했다. 김 경장은 권씨 집에서 그 우유팩을 수거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지문과 DNA 분석을 의뢰했다. DNA 분석결과는 2주후에 나온다. “꼭 우리 어머니 같아 안쓰런 마음으로 말씀을 듣던 중 의외의 단서를 잡은 셈이죠. 직접 집으로 찾아가니 할머니도 여러 번 안아주시며 ‘고맙다’고 하시더라고요.”

 중랑서 ‘여경 경제범죄 수사팀’이 출범 한 달을 맞았다. 중랑서는 지난달 2일 여성 경찰관(8명)으로만 구성된 경제3팀을 발족했다. 최근 여성·노인·아동을 대상으로 하는 경제 범죄가 늘어난 데다 여성 경제범이 많아져 여성 수사관들의 역할이 커졌다는 판단에서다. 경력 25년차의 황경희(46·경감)팀장부터 막내 권미정(31) 순경까지 팀원 전체가 여경으로 채워진 경제팀은 경찰 사상 처음이다.

 1일 오전 깔끔한 정장 차림의 여성 경찰관 8명은 민트색 페인트가 칠해진 사무실 안에서 조사에 한창이었다. 15평 남짓한 공간이 조용한 말소리로 가득 찼다. “사기 피의자가 도주한 게 언제죠?” 목에 분홍색 스카프를 맨 박애화(30) 경장이 마주앉은 50대 여성에게 차분하게 물었다. 여느 경찰서와 같은 고성이나 몸싸움은 없었다. 이날 조사를 받으러 온 한 피의자는 “경찰서가 아니라 낮 시간대 은행에 온 기분”이라고 했다.

 황 팀장은 “지난 한 달 간 경찰서 안팎으로 과분한 칭찬과 관심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조사를 받는 고소인·피고소인들의 만족도가 높아요. ‘꼭 여경 수사팀이 맡아 수사해 달라’고 요청해 대기 중인 사건이 10여 건에 이를 정도”라고 귀띔했다. 이어 “우리 팀은 사건을 ‘털어낸다’가 아니라 ‘치안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마인드로 일한다”며 “기업처럼 경찰도 ‘고객 만족’을 외쳐야 할 시대”라고 강조했다.

 전윤숙(34)경위는 3주 전 조사를 마치고 돌아간 한 피고소인으로부터 “너무 친절하게 대해주셔서 감사하다. 행복한 날 보내시라”는 내용의 휴대전화 문자를 받았다. 전 경위는 “고소인은 몰라도 피고소인에게 이런 말을 듣는 경우는 드물다”면서 "남녀 모두 여경에게는 유·무죄 여부를 따지기에 앞서 감정적 하소연을 하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황 팀장은 “우리 팀에서는 누가 오든 반드시 차 한잔을 내밀고 인간적으로 다가가는 게 원칙”이라며 “경제 수사의 1차 목적은 처벌이 아닌 피해 변제가 돼야 한다”고 설명했다.

 중랑서 김종만 수사과장은 “출범 초기에는 수배자 처리 등 험한 일 때문에 걱정한 것도 사실이지만 요즘에는 되레 경제 3팀를 벤치마킹하겠다는 문의가 쏟아지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황 팀장은 오는 5월부터 경찰청에서 일선 경찰들을 상대로 ‘고객만족 수사’에 대한 강연을 진행한다. 그는 “경찰서 내 다른 팀들의 회식 요청도 쇄도하고 있다”며 “쏟아지는 관심만큼 확실한 성과를 보여주겠다”고 다짐했다.

글=심새롬 기자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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