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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 종식 이후 … 수의과학검역원 수의사 이경기·하진경 부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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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하진경(左), 이경기(右)

국립수의과학검역원 소속 수의사인 이경기(41)·하진경(38·여)씨 부부에겐 정말 혹독한 겨울이었다. 전국을 강타한 구제역 때문이다. 두 사람은 먹고 자는 시간을 줄여가면서 구제역 판정 검사에 매달렸다. 구제역 시료를 채취하고, 예방백신을 놓느라 전국을 돌아다녔다. 한 집에 살면서도 얼굴을 보지 못하는 날이 많았다. 게다가 올해 1월엔 조류인플루엔자(AI)까지 겹쳤다.

 이씨는 “매년 가축전염병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하는데 이번엔 상상 이상이었다”고 말했다. 몸이 힘든 것은 견딜 만했다. 피해 농민들과 직접 만나는 일은 고통 자체였다고 한다. “살처분 판정을 받고 우는 농민들을 볼 때면 ‘내가 잘못했다’는 죄책감에 고개를 들 수 없었어요.” 부인 하씨의 말이다.

 두 사람은 의심스러운 소나 돼지를 검사할 때마다 “제발 음성으로 나와라”하고 기도를 했다. 하지만 기도는 번번이 빗나갔다. 이씨는 “구제역이 거의 확실한데도 옆에 있는 농민이 ‘구제역은 아니죠’라고 물을 때는 정말 이 일을 그만두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어른들만 힘든 게 아니었다. 여덟, 아홉 살 난 두 딸도 친척집 생활을 해야 했다. 두 딸의 일기장에는 ‘구제역과 AI가 우리나라를 떠났으면 좋겠다’ ‘엄마·아빠의 비상근무가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내용으로 가득 채워졌다. 이씨는 “하루는 큰애가 ‘엄마나 아빠 중 한 명은 회사를 그만두면 안 되느냐’고 묻는데 할 말이 없었다”며 “그래도 ‘아픈 돼지랑 소를 빨리 낫게 해달라’고 격려해 주는 딸들 때문에 힘을 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 24일 정부는 발생 116일 만에 구제역 종식을 선언했다. 31일엔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의 구제역 방역 활동도 마무리했다. 하지만 이씨 부부의 비상근무는 아직 진행형이다. 이씨는 AI 검사와 전염병 연구를 하고 하씨는 수입하는 소·돼지의 전염병 검사를 담당할 예정이다. 하씨는 “예방연구를 통해 이런 불행한 일이 다시 생기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글=최모란 기자
사진=김도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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