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 잘 날 없는’ 미주한인은행권 무엇이 문제인가 (상)] 행장 수난시대

미주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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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전부터 '같은 얼굴' 행장 단 1곳도 없어
문제만 생기면 결별 악순환 / 새 성장동력 찾기도 바쁜데 '선장' 교체로 방향 못잡아

미주 한인 은행들도 대공황 이후 최악이라는 불경기 터널을 조금씩 빠져나오는 모습이다. 자본금 부족으로 생존을 걱정해야 했던 은행들도 큰 고비는 넘긴 모습이다.
하지만 은행별 실적 면에서는 그동안의 대응 전략에 따라 편차가 크다. 또 줄지 않는 부실대출 문제, 연 이은 행장 교체에 따른 경영진 불안 등 아직도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경기 회복세가 가시화되고 있는 지금, 한인은행권이 안고 있는 문제점은 무엇인지 진단해 본다.

모 은행장은 최근 한인은행가의 상황을 '행장 수난시대'라고 표현했다. 지난 주 중순 커먼웰스비즈니스은행 이사회가 최운화 행장과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했다는 소식이 알려진 직후였다. 당시는 윌셔은행이 작년 4분기 실적에서 1000만 달러 추가 손실 사실을 발표하며 조앤 김 전 행장의 관리감독 소홀을 직접적인 이유로 지목 은행권 전체가 한창 술렁이던 때였다.

그는 "최고경영자로서 당연히 책임질 부분도 있지만 무슨 일이 있을 때 마다 행장부터 해고하고 보는 풍토에 좌절감마저 느낀다. 직원들 사기 생각에 겉으로 말은 못하지만 많은 행장들 속이 시커멓게 타 있을 것"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행장 수난시대'라는 자조적인 표현은 경기회복에 맞춰 조직을 재정비하고 새 성장동력을 찾아 나서야 할 은행들이 아직 나아갈 방향성조차 찾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행장 수난시대

최근의 잇단 행장 교체는 지난 2007~2008년 은행 실적이 악화되던 때와는 성격이 다르다. 당시는 '실적악화'가 주 원인이었다면 최근의 빈번한 행장 교체는 변화의 필요성으로 인한 성격이 짙다는 것이 은행권의 분석이다.

현재 남가주 은행가에서 2008년 시작된 금융위기 이전부터 게속 같은 은행에 몸 담고 있는 행장은 한명도 없다. 그만큼 최근 2~3년동안 변화가 심했다는 얘기다.

한 은행 관계자는 "최악의 상황을 넘기며 부진한 실적에 대한 책임 소재와 함께 경영의 변화를 생각하게 하는 시점"이라며 "행장을 은행 성장을 위해 함께 할 파트너가 아닌 월급 사장 정도로 밖에 보지 않는 이사들의 인식도 문제"라고 지적했다.

다행히 다른 은행으로 옮긴다고 해도 문제는 남는다. 금융감독 당국은 금융위기 이후 행장 경험이 없거나 경험이 있더라도 확실한 능력을 보이지 못한 행장에 대해선 쉽사리 승인을 내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작년에 행장 선임 문제로 어려움을 겪었던 모 은행 관계자는 "감독 당국이 검증되지 않은 인물에는 은행을 맡길 생각이 없어 보인다"고 전했다.

▶경영진만의 잘못인가

반면 한 은행 이사는 "한인 은행에서는 이사회가 경영진을 너무 쥐고 흔든다는데 결과가 좋았으면 그럴 일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같은 은행 이사들의 인식은 최근 커먼웰스에서 가장 잘 드러났다는 평이다.

최 전 행장과 일부 이사간의 불화에 우선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 은행권 소식통은 "경영 공백을 피하면서도 최 행장과 이사진 서로가 살 길을 찾을 수 있었을텐데 뒷일 생각않고 감정적으로 대처해 문제를 키웠다"며 "이에 대한 은행의 공식적인 입장이 아직도 없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윌셔의 조앤 김 전 행장 사임에 대해서도 ‘모든 게 행장과 일부 경영진만의 문제인가’라는 지적이 나온다. 또 다른 은행의 고위 간부는 “1000만달러가 넘는 손실이 더 나왔을 정도의 대출 건들을 과연 이사회가 모르고 있었나 하는 의문이 지워지지 않는다”며 “큰 문제가 생기면 관련자 문책으로 무마하고 넘어가는 과거 30년과 다른 게 없다”고 지적했다. 지난 2월 유재환 행장의 거취 문제를 두고 은행가 전체가 들썩였던 상황도 이같은 지적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평이다.

▶해결책 없어 답답할 뿐

지난 2007년 나라은행이 민 김 전 행장(현 오픈뱅크 행장)을 신임 행장으로 선임한 것을 시작으로, 2008년 윌셔의 조앤 김 전 행장, 2010년 태평양의 조혜영 행장 등 내부 승진 사례가 나와 큰 환영을 받았다. 하지만 현재 조 행장을 제외하면 민 김 행장은 나라에서 사임한 뒤 오픈뱅크로 옮겼고 조앤 김 전 행장은 경질이나 다름없는 이유로 사임했다. 이에 로컬 출신 행장이 나오던 분위기에 먹구름이 낄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온다.

게다가 현재 대부분의 한인 은행들이 행정제재 하에 있는 것도 현실적인 걸림돌이다. 현재 40~50대의 차세대 행장 후보군이 자신의 능력을 증명할 기회를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 은행 관계자는 “경기가 풀리고 행정제재에서 벗어나, 즉 시간이 지나면 해결이 되지 않겠냐”며 “인수합병은 피하기 어렵게 될 테고, 이를 통해 자연스런 세대교체가 이어지면 인재양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이 이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염승은 기자 rayeom@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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