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 명반추천] BBM 〈Around The Next Dream〉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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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록음악의 조류중 지양되어야 할 부문이 있었다면 무분별한 헌정음반의 남발과 새로울 것 없는 노장 그룹들의 재결합 활동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흐름의 이면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상업성을 굳이 논의하지 않더라도 후자의 경우,그룹 절정기때 보여주었던 연주기량이나 창작의욕에 못미치는 재결합 공연 및 음반들(재결합이란 이름하에 단지 옛 히트곡을 재수록한 음반들)은 많은 팬들로 하여금 실망과 안타까움을 자아내기에 충분한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대가들의 관록에서 우러나온 훌륭한 명반들 또한 적잖이 발표되어 후배 음악인들의 좋은 본보기가 되었는데 그중 94년 진져 베이커(Ginger Baker), 젝 브루스(Jack Bruce), 게리 무어(Gary Moore)에 의해 결성된 록 트리오 BBM의 유일작 〈"Around The Next Dream〉은 여러가지 측면에서 새로움을 발견할 수 있으며 작품의 완성도 또한 높은 수작으로 평가할 수 있다.

93년 2월 크림(Cream, 1966 ~ 1968)의 옛 멤버인 에릭 클랩턴(Eric Clapton), 젝 브루스, 진져 베이커가 함께 공연을 가지자 이들의 재결성 가능성이 재기되었다. 하지만 70년 Derek & Dominos 이후 그룹 활동을 기피해온 에릭 클랩턴 때문에 재결합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대신 〈Still Got The Blues〉(1990), 〈After Hours〉(1992)에서 Albert King, B B King 과 연주하며 블루스 음악에 대한 학구적 자세를 견지한 아일랜드 출신의 고집쟁이 기타리스트 게리 무어(54년생)가 '드럼의 마왕'이라고 불리우는 진져 베이커(39년생), 실력파 베이시스트 젝 브루스(43년생)와 의기투합을 이룸으로써 록 트리오 BBM이 탄생하게 되었다.

물론 에릭 클랩턴이 가담하여 크림이란 이름하에 재결합 음반을 발표하였다면 〈Around The Next Dream〉은 분명 방향성을 달리했을 것이다. 에릭 클랩턴이 애용하는 Fender Stratocaster 대신 게리 무어는 Gibson Les Paul로 heavy Blues의 음색을 완벽히 구사하였으며 특히 수록곡중 'Can't Fool The Blues', 'I Wonder Why(Are You So Mean To Me)'에서는 게리 무어가 90년대에 접어들어 추구했던 블루스 록의 본질에 가장 근접한 작품이라고 생각된다.

완벽한 연주인으로 정평이 나있는 젝 브루스의 경우 '68년 크림의 해체 이후에도 의욕적인 활동을 펼쳐왔는데 BBM 이전에도 두차례의 트리오 록 그룹을 결성한 바 있다. 72년 Moutain 출신의 Leslie West(guitar), Corky Laing(drum)과 함께 West,Bruce & Laing을 결성하였고 81년에는 Procol Harum 출신의 Robin Trower(guitar), Bill Lordan(drum)과 함께 B.L.T(멤버들의 initial을 group명으로 하였다는 점에서 BBM과 동일하다.)를 결성한 사실을 비추어 볼때 젝 브루스가 추구하는 소수정예 멤버에 의한 작품성 있는 활동에 얼마나 강한 집착을 보였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그의 탁월한 작품활동에도 불구하고 젝 브루스의 강한 개성은 크림 시절부터 진져 베이커와 잦은 마찰을 빚어왔으며 BBM까지 그가 활동한 그룹들은 모두 단명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Around The Dream〉 수록곡중 'City Of Gold', 'Why Does Love(Have To Go Wrong)?' 등에서 들려준 젝 브루스의 안정적이며 에너지가 충만한 bass 연주는 그의 명성을 다시한번 확인시켜 주기에 충분하다.

BBM의 드러머 진져 베이커는 〈Around The Next Dream〉을 발표할 당시 55세란 나이의 고령에도 불구하고 그의 별명대로 마왕다운 실력을 들려주고 있는데 그는 크림 해산이후 Blind Faith, Air Force 등에서 활동했으며 여러장의 솔로 앨범 또한 꾸준히 발표하여 왔다. 그의 연주에는 언제나 아프리카 토속리듬에 대한 강한 관심이 반영되어 있으며 실제로 나이지리아에 녹음 스튜디오를 설립하여 그곳 토착 음악인들과 작품활동도 하였었다. 이러한 그의 음악적 특성이 'Glory Days', 'Waiting In The Wings'에서 잘 나타나있으며 후배 드러머들의 맹주로서 크림 시절이나 Blind Faith 시절에 들려준 연주이상의 뛰어난 드러밍을 확인해 볼 수 있다.

아쉽게도 진져 베이커와 젝 브루스는 Graham Bond Organization에서부터 30년 이상의 세월이 흘렀지만 또다시 결별하고 한 곳에 머무르지 못하는 고독한 기타리스트 게리 무어 또한 블루스를 향한 자신의 솔로 활동에 전념함으로써 BBM은 〈Around The Next Dream〉을 유일작으로 해산하게 된다.

BBM의 〈Around The Next Dream〉은 그들이 지나온 오랜 음악생활을 돌이켜 볼 때 멤버들 개인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볼 수 있겠으나 Yardbirds 이후 록 역사상 오랫동안 추구되어온 헤비 블루스 록의 완성이라는 측면에서 금세기를 마감하는 이즈음에 다시한번 작품의 가치가 새로워지는 명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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