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리나 김지영 신년 인터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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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스타가 됐다구요? 그렇게 볼수도 있겠죠. 주위 사람들이 알아보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발레는 세계 공통어예요. 세계 무대에서 저는 미흡한 점이 많아요. 스타라는 찬사는 부담스럽고 어색합니다."

`21살의 신데렐라'는 부끄러워했다. 송년공연 「호두까기 인형」을 연습하다 나온 국립발레단 수석무용수 김지영은 회색 트레이닝복 차림대로 `아직 연습중'인 새내기 무용수로 자신을 봐달라고 했다.

그래도 99년, 그녀는 단연 빛났다. 「USA국제발레콩쿠르」 동상, 「98 파리국제무용콩쿠르」 듀엣 1등상 수상으로 한국인에게는 아득하게 보이기만 했던 세계 대회고지를 정복한게 벌써 지난해의 일. 그 공로로 올해는 무용수로서는 이례적으로 정부가 주는 문화훈장을 받았고, 세계 주요 콩쿠르에서 입상한 각국 무용수들과 나란히 누례예프를 추모하는 헝가리의「위너스 갈라」 무대에도 섰다.

`세계'의 경험은 그녀에게 꿈을 만들어주었다. "구체적이지는 않아요. 계속 무대에, 더 큰 무대에 서는 것이죠. 한국 뿐 아니라 세계가 알아주는 김지영이 되고 싶어요." 그러나 막연한 꿈도 때로 얼마나 무서운 위력이 되는가. 그녀는 자신의 수상에 대해 "운도, 노력도, 실력도 따랐지만 무엇보다 꿈이 이뤄진 것"이라고 말했다.

파트너인 같은 발레단 수석무용수 김용걸이 「97 모스크바국제발레콩쿠르」에서 동상을 탔을때 `정말 좋겠다. 꿈같다. 나도 국제 콩쿠르에서 상을 탔으면...'하고 부러워했던 것이 지금의 그녀를 있게 했다.

주변에서 `몸매가 러시아 발레리나 뒤지지 않는다', `테크닉 습득과 작품 해석이 빠르다', `20년에 한번 나올까말까 하다'는 등 칭찬이 쏟아진다. 그녀는 묵묵부답.

"작품을 하는 것보다, 보고 있는게 더 힘들어요. 공연이 끝나고 연습이 없는 날이 더 지칩니다. 무용이 쉽게쉽게 되기도 해요. 그것은 장점이기도 하지만, 연습을 게을리 할 수 있으니 동시에 단점이죠."

예원학교 1학년 때 이모가 "발레 계속할거니"라고 물었던 날, 울고불고 밤새 난리를 피웠다. 다리가 아파 학원에 못가는 날이면 방문을 잠가놓고 연습했던 기억도 있다. 예원학교 3학년때 세계 최고로 꼽히는 러시아 바가노바 발레스쿨로 유학간 것은 오로지 발레만 할 수 있다는 매력 때문이었다. 유학에 대한 열망이 그곳에서의 외로움도, 외국인으로서 받은 정신적인 상처도 모두 이겨내게 했다.

어머니가 96년 그녀의 졸업공연을 관람하던 중 세상을 떠나고 설상가상으로 발까지 다쳤을 때 그녀는 석달 동안 최악의 슬럼프를 경험했다. 지금도 그런 슬럼프가 두렵다.

"저는 계속 무대에만 설 거예요. `보여주는 예술'인 발레는 일단 무용수의 무대가 중요합니다. 대학원 진학이나 이론공부로 재능있는 친구들이 빠져나가고, 무용수가 설수 있는 무대가 많지 않고, 중.고.대학을 거치며 무용가들이 춤을 안 추거나 취미활동 정도로 여기는 것 같은 풍조가 안타깝습니다."

내년에는 정기공연 계획만 잡혀 있다. 그래도 많은 기량을 쌓고 배울수 있기 때문에 외국 무대에는 기회가 닿는대로 설 계획이다.

"요즘은 현대발레에도 매력을 느껴요. 한번 해보니 힘들고, 몸도 많이 아팠지만 도움이 됐어요. 세계적인 흐름을 파악할수도 있었구요. 고전발레라면 앞으로 한편의 영화를 보는듯한 `스토리 발레'를 통해 관객들에게 감동을 주고 싶습니다."

주변에서 고등학교, 대학교 등 왜 정규교육과정을 밟지 않느냐는 질문을 많이받았던게 사실이다. 그러나 입상 세례가 잇따르자 그런 질문들이 쑥 들어갔다.

안무가는 희망하지 않는다. 자신에게는 그런 천재성이 없다는 것이다. 머릿속은 오로지 무대 뿐. 커다른 무대를 압도하는 위대한 발레리나를 그릴 뿐이다.

"`스타'라는 말이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도록, 그만큼 크고 싶습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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