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판사와 일할 땐 몸매 얘기하지 마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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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서울중앙지법의 일부 부장판사가 최근 여성 배석 판사들을 대할 때 주의할 사항을 매뉴얼로 정리해 공유한 것으로 27일 알려졌다. 매뉴얼은 특히 ‘배석 판사 두 명이 모두 여성인 경우’에 대해 다루고 있다. 이 법원은 민사합의·항소 재판부 45개 중 7개 부(15.6%)의 배석 판사가 모두 여성이다.

 ‘여성 배석 판사들과 함께 근무하는 부장판사의 유의점’이라는 제목의 6쪽 분량의 매뉴얼은 매우 구체적이다. ▶여성의 생리적인 특성을 고려해 재판을 쉬지 않고 두 시간 이상 진행하지 않으며 ▶배석 판사의 의견을 들을 때 얼굴 거리가 너무 가깝지 않게 1m 정도 두고 ▶여성 판사들이 재판 기록을 들고 오는 수고를 덜 수 있게 부장판사가 배석 판사 방으로 직접 가서 판결 합의를 하는 등의 방법을 제시했다.

 또 동성 간에는 서로 비교하는 마음이 더 크기 때문에 유의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 사람에게만 대화 주제가 몰리지 않게 하고,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는 어느 한쪽에 대한 칭찬이나 질책은 피하라는 것이다. 한 사람만 옆자리에 앉히면 편애한다는 인상을 줄 수 있으니 두 사람 모두 부장판사의 맞은편에 앉게 하고 대화를 나눌 때의 시선도 ‘10초씩’ 등 골고루 분배하라고 조언했다.

 업무뿐 아니라 일상생활에 대해서도 구체적으로 언급했다. ▶의상·몸매에 관한 이야기나 결혼 여부에 관한 질문을 피하고 ▶여성 판사와 단둘이 방에 있을 수밖에 없는 경우는 방문을 열어두며 ▶여성 판사가 퇴근하기 전에는 방에 혼자 있더라도 벨트를 풀거나 느슨하게 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이다. 여름에 와이셔츠 단추를 너무 많이 풀거나 야근할 때 반바지로 갈아입지 말라는 주의사항도 있다. ▶여성이 남성보다 식사 속도가 늦는 경우가 많으므로 배석 판사들보다 빨리 먹지 않도록 배려하고 ▶식사 시간 대화를 위해 아이돌 그룹, TV 드라마 등에 관해 가벼운 정도라도 관심을 가지는 것이 좋다는 내용까지 있다.

 서울중앙지법은 이에 대해 “지난해 여성 배석 판사 두 명과 함께 일했던 한 부장판사가 전근을 가면서 개인적으로 남긴 문서”라며 “법원의 공식적인 입장이 아니다”고 밝혔다.

구희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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