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5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치명적인 화살 한 방 - 155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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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9면

<본선 8강전>
○·왕레이 6단 ●·허영호 8단

제16보(155~163)=각양각색의 ‘사활(死活)’이 바둑판을 가득 메우고 있다. 계산의 바둑, 대세의 바둑은 사라지고 전투의 바둑, 옥쇄의 바둑이 차고 넘친다. 지금 좌변 흑대마의 사활로 시작된 불길이 하변 백대마로 옮겨 붙은 상황이다. 죽기 살기의 아수라 속에 초읽기란 놈은 왜 그리도 박정한지….

 허영호 8단의 손에서 떠난 검은 돌 하나가 155의 급소를 친다. 그 치명성 탓인지 화살처럼 무서운 속도감이 느껴진다. 실눈을 뜨고 판을 노려보는 허영호. 가는 눈이 더 가늘어졌다. 그 맞은 편에서 왕레이 6단이 참았던 신음을 낮게 토해낸다. 156으로 막자 157. 158 잇자 159의 젖힘. 이 수를 둘 때 허영호의 손끝이 묵직했다. 백의 죽음을 확신한 저승사자의 묵직한 발자국 소리. 이젠 사망선고만이 남았다. 160엔 161, 162엔 163. 죽음은-그것이 설령 돌의 죽음이라 할지라도-허망하다. 좌변에선 흑대마가 죽었고 이번엔 백대마가 죽었다.

 초읽기 속에서 검토진도 정신이 없었지만 156에 아쉬움이 남는다고 한다. 이 수로 ‘참고도’ 백1 쪽으로 막으면 5로 두는 까다로운 수가 생긴다. 흑A는 B의 패. 흑B의 치중엔 C의 절단. 지금 상황과 달리 판 위엔 불확실성이 크게 증폭된다. 초읽기니까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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