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 가장 천현진군 모스크바 우주항공국립대 유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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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기 엔진 분야의 최고 전문가가 되고 싶습니다.”

광주전자공고 3학년 천현진(千弦珍·18)
군은 내년 1월 16일 러시아행 비행기에 오른다.광주전자공고와 자매결연을 맺고 있는 모스크바 우주항공국립대학으로 유학을 떠나는 것이다.

자동차반에서 최상위권을 유지해온 千군은 1학년 때부터 러시아어 공부를 꾸준히 해왔다.올해 초 이 대학측에서 한국에 파견한 교수로부터 집중적인 러시아어 교육도 받아왔다.

“모스크바 우주항공국립대학은 우주공학 분야에서 세계 5위 안에 드는 명문 학교입니다.그동안 수많은 항공 엔지니어를 배출했습니다.”

최고의 항공엔지니어를 꿈꾸는 千군은 벌써 이 대학 학생이 된것처럼 자부심으로 가득찬 표정이었다.

千군은 소년가장이다.아버지는 千군이 4살 때던 지난 85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다.몇 달 후 어머니마저 千군과 갓 돌을 지난 동생 현욱을 남겨놓고 가출했다.

이후 千군 형제는 삼촌들 집을 전전하다가 삼촌들마저 대도시로 떠난 초등학교 2학년부터는 전남 화순의 시골 농가에서 단 둘만 살아왔다.

초·중학교에서 줄곧 최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했던 千군은 인문계 고등학교 대신 광주전자공고를 택했다.

“빨리 졸업해 직장을 잡아 동생을 공부시키고 싶었어요.그래서 자동차학과를 택했지요.공고로 진학하면 장학금도 받을 수 있었고요.”

한달 뒤면 머나먼 이국땅으로 떠나는 千군.그러나 동생 걱정이 발목을 잡는다.
광주에 사는 작은아버지(39)
가 동생을 돌봐주겠다고 약속했지만,그도 비디오 대여점을 운영하며 홀로 어린 두 딸을 키우는 어려운 처지다.

유학비용도 큰 부담이다.전 세계의 우수한 젊은이들이 몰려드는 모스크바 우주항공국립대의 1년 수업료는 3백여 만원.

얼마전 소년소녀가장 지원금 등을 푼푼이 저축해 모은 1백여 만원으로 입학 수속을 마치긴 했지만 앞으로 일이 난감할 뿐이다.

“작은 아버지께선 수업료를 대주겠다지만 언제까지 신세를 질 수는 없지요.좋은 성적을 유지해서 꼭 장학금을 탈 작정입니다.”

“훌륭한 엔지니어가 돼서 돌아오면 어머니도 찾아볼 생각”이라며 환하게 웃는 千군의 머리 속엔 자신이 만든 엔진이 장착된 ‘희망’이라는 비행기가 날고 있었다.

이가영 기자 <ide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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