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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이트칼라의 ‘반검찰’ 정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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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권석천
사회부문 차장

3월의 어느 날 저녁이었다. 서울 서초동의 한 식당에 두 남자가 나타났다. 드라마 ‘대물’의 주인공이었던 전직 검사 하도야, 그리고 영화 ‘공공의 적 2’의 검사 강철중이었다. 검찰 후배인 하도야가 뒤늦게 들어서서는 강철중을 향해 넙죽 고개를 숙인다. “형님. 오랜만입니다.” “그래, 검사 그만두니까 좋아?”

 하도야는 대답 대신 빙긋이 웃는다. “주양(영화 ‘부당거래’의 검사)은 안 와요?” “됐다. 그런 녀석은… 그건 그렇고, 국회의원들이 대검 중수부를 폐지하겠다고 하던데 너무 심한 거 아니냐? 청목회다 뭐다, 자기들 수사한다고 입법권 휘둘러서야 되겠느냐고.” “그러게요. 근데 이상한 게, 주위 사람들 반응이… ‘중수부 폐지 못할 이유가 뭐냐’ ‘검찰 개혁은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해서요.”

 하도야의 잔에 소주를 따르던 강철중이 목소리를 높인다. “너도 알지만 우리 검사들, 정말 열심히 하잖아. 만날 수사에, 재판에 파김치가 되는데….” “그렇죠. 하지만 나와서 보니까 회사 임원, 교수, 회계사, 같이 연수원 다닌 변호사들까지 이른바 화이트칼라들이 검찰에 더 부정적이에요. 여론 주도층이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인데….” “화이트칼라, 여론 주도층, 대체 그네들이 왜 우리한테 등을 돌리는 거지?”

 하도야가 진지한 얼굴로 말을 받는다. “검찰 수사 대상 중 하나가 화이트칼라 아닙니까. 검찰 조사 받으면 기분이 나쁠 수밖에 없지만 과도하게 강압적이란 느낌을 갖는 것 같아요. ‘미리 유죄 결론을 내려놓고 한쪽으로 몰아간다’고 말하는 사람도 적지 않고요. 저도 검사 할 땐 피의자들이 거짓말한다고 믿었는데, 지금은 진짜 억울한 경우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반면에 권력 있고 ‘빽’ 있는 자에겐 약하다, 정치적으로 움직인다는 지적과 맞물리면서 검찰 조직을 비판해야 쿨한 것 같은 분위기가 굳어지고 있는 거죠.”

 강철중이 답답하다는 듯 술을 들이켠다. “그렇다고 화이트칼라 범죄에 손을 놓을 순 없는 거 아니냐.” “범죄 수사는 해야죠. 그러나 수사 방식은 바꿀 때가 된 것 같아요. 잘못한 게 있으면 응분의 처벌을 받겠는데, 인간적 모멸감까지 주는 건 심한 게 아니냐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압수수색에 세 번, 네 번 계속 소환해서 진 빠지게 할 필요가 있느냐고들 해요.” “그거야 범죄 수법이 교묘해지니까….” “교묘해지는 만큼 검찰도 수사 기법을 개발하고 수사 능력을 키워야 하지 않을까요? 언제까지 법원 무죄 판결에, 영장 기각에, 국회 개혁안에 반발만 하고 있을 겁니까.”

 강철중은 양미간을 좁힌다. “네 얘긴 우리 스스로를 돌아볼 때다, 이거지?” “예. 우리 모습이 과연 어떻게 비치고 있는지 살펴서 고칠 건 고치고 수사 결과로 피의자를 승복시킬 때, 그러면서도 수사 실패는 과감하게 인정할 때 국민들도 박수를 보내지 않을까요.” “주양이 ‘부당거래’에서 했다는 말이 생각나는구나. ‘호의가 계속되면 그게 권리인 줄 안다’고. 하지만 거꾸로 우리가 착각했던 게 아닌가. 수사를 우리 권리인 양… 그런 게 아니었나….”

권석천 사회부문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