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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od&] 술과 음식의 ‘소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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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1면

마리아주는 ‘술과 음식의 궁합’을 뜻한다. 사람마다 어울리는 짝이 있듯이 술과 음식도 저마다 짝이 있다. 생선요리와 화이트와인, 고기요리와 레드와인은 마리아주의 가장 기본적인 예다. 사진은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의 ‘테이블34’ 식탁. 레드와인이 담긴 잔 뒤로 송아지 안심요리가 보인다. 니콜라스 드비쉬 셰프와 엄경자 소믈리에가 마리아주를 했다.


‘마리아주’는 프랑스어로 ‘결혼’이란 뜻이다. 그러나 마리아주는 인간의 결혼뿐 아니라 음식의 결혼도 뜻한다. 어떤 음식에 어떤 술이 어울리는지, 즉 음식과 술의 궁합을 따져 매칭하는 것도 마리아주다.‘고기엔 레드와인, 생선엔 화이트와인’이 마리아주의 대표 사례다. 하나 이 사례는 아주 기본적 수준이다. 마리아주의 세계는 끝이 없다. ‘술 따로 음식 따로’였던 국내에서도 술과 음식의 궁합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호텔과 레스토랑에선 마리아주 프로모션이 빈번하다. 와인뿐 아니라 전통주·사케·위스키에도 확대되기 시작하고 있다. 결혼은 보통 일이 아니다. 천생연분이라면 상대를 빛나게 하지만 천적을 만나면 서로 빛을 잃는다. 마리아주는 그래서 중요하다.

글=이상은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 와인 열풍 타고 온 마리아주

와인 산지로 유명한 곳은 음식도 발달했다. 프랑스 보르도 지방은 메도크 와인과 함께 양고기 요리가, 프랑스 피노누아 지방은 버건디 와인과 함께 소고기 요리가 유명하다. 마을에서 생산되는 술에 어울리는 요리를 찾다 보니 자연스레 음식도 함께 발달했다.

 한국은 2000년대 중반부터 마리아주 개념이 퍼졌다. 일본 만화 『신의 물방울』 등의 영향으로 국내에도 와인 열풍이 불고, 덩달아 와인에 어울리는 음식까지 따지게 된 것이다. 서울 삼성동 그랜드인터컨티넨탈호텔 엄경자(35) 소믈리에는 “호텔에서 일을 시작한 2000년만 해도 손님 대부분이 음식과 와인을 따로따로 생각했다”고 말했다.

 최근엔 와인 교육기관에서 마리아주만 전문적으로 강의하기도 한다. 서울 신사동의 ‘WSA PDP’는 프랑스·이탈리아·아르헨티나·태국·한국의 음식과 그에 맞는 와인을 매칭하는 수업을 열었다. 강의를 진행하는 백은주(40) 강사는 “지금까지 한국은 반주보다 안주 개념이 강했다”며 “이젠 소주를 마시기 위해 김치찌개를 떠먹는 안주 문화를 넘어 한 테이블 위에서 술과 음식이 동등하게 조우하는 서양의 반주 문화가 퍼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 다양한 마리아주의 세계

마리아주의 세계는 끝이 없다. 때로는 비슷한 음식과 비슷한 술이, 때로는 반대되는 음식과 술이 어울린다. 매운 양념이 들어간 한식 요리엔 반대로 달콤한 와인을 마셔야 음식의 매운 맛이 더 맛있게 느껴진다. 반면 레몬이나 식초 드레싱을 뿌린 새콤한 샐러드엔 똑같이 신맛이 나는 화이트와인이 어울린다. 신 음식엔 신맛의 술을 마셔야 음식 고유의 신맛이 부드럽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달콤한 디저트에도 똑같이 달콤한 아이스와인을 마시는 게 좋다. 달콤한 디저트에 신맛 나는 와인을 마시면 디저트의 단맛이 지나치게 부각된다. 기름진 삼겹살구이엔 햇포도로 만들어 신맛이 강하면서도 가벼운 느낌의 보졸레 누보가 적당하다. 튀김처럼 느끼한 음식도 산도가 높은 와인과 어울린다.

 마리아주의 뜻이 결혼이라는 사실을 생각하면 재미있다.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 결혼하는 경우도 많지만, 반대인 사람끼리 서로 단점을 보완하며 잘 사는 경우도 많다. 술도 똑같다. 많은 사람을 만나야 자신에게 맞는 사람을 알 수 있듯이 술과 음식도 계속 마셔 보고 먹어 봐야 최고의 궁합을 찾아낼 수 있다.

# 마리아주의 진화

사케·위스키·전통주에도 마리아주가 있다. 대표적인 게 사케다. 사케는 원래부터 음식 재료 고유의 맛을 살려주기 위해 마신 술이다. 『사케 입문』 저자 박정배(47)씨는 “일본과 교류가 잦아지면서 일본의 사케 문화가 한국에도 상륙했다”며 “국내에서도 사케와 일본 음식 매칭 프로모션은 수시로 열리고 있다”고 소개했다.

 위스키는 음주문화가 먼저 바뀌는 분위기다. 과거 위스키는 취하기 위해 마시는 술로 인식됐으나 지금은 달라졌다는 평가다. 『위스키 바이블』저자 장동은(37)씨는 “위스키가 기존의 ‘드링킹’ 개념에서 이제는 음식과 함께 느끼는 ‘테이스팅’ 개념으로 변화하고 있다”며 “한식의 경우 불고기처럼 부드러운 음식이 어울린다”고 말했다.

 전통주 마리아주도 여러 시도를 하고 있다. 지난해 농촌진흥청 주최로 열린 ‘제1회 전통주 소믈리에 대회’에선 와인 디너처럼 전통주에 다양한 음식을 매칭했다. 서울 롯데호텔과 쉐라톤그랜드워커힐호텔도 올 4월과 10월 처음으로 전통주 메이커 디너를 열 예정이다. 와인 메이커 디너처럼 브랜드별 전통주의 제조과정과 그에 어울리는 음식을 매칭하는 행사다.

 쉐라톤그랜드워커힐호텔 박해원(39) 소믈리에는 “막걸리 같은 대중적인 술에서 시작해 점차 확대해야 한다”며 “전통주를 한식과 함께 알리면 한식 세계화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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