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밥 때문에 인종차별… 태권도 배워 법대공부 ” 미국 판사가 된 태권소년

미주중앙

입력

15일 둘루스 법원에서 이정헌(오른쪽) 변호사가 찰스 루이스 베렛 수석판사 앞에서 취임 선서를 하고 있다.

미네소타주 둘루스에 거주하는 이정헌 변호사가 15일 둘루스 시 법원에서 취임식을 갖고 판사로서 활동을 시작했다.

1.5세 한인인 이 변호사는 이날 찰스 루이스 베렛 둘루스 수석판사 앞에서 “이해관계에 얽매지이 않고 법에 따라 공정하게 재판을 하겠다”고 선서했다. 이 판사는 앞으로 다른 5명의 판사와 함께 둘루스시 판사 직무를 파트타임으로 수행한다.

베렛 수석판사는 “둘루스시 한인 인구와 비즈니스가 급증하고 있어 한인에 대한 사법 서비스를 강화하기 위해 한인 판사 임명을 결정했다”며 “이 판사가 애틀랜타에서 29년간 변호사와 판사로서 지역사회를 위해 성실하게 봉사한 점을 높이 평가한다”고 밝혔다.

이 판사는 “한인들이 DUI, 교통위반, 주류 라이선스 문제 등으로 법원을 찾는 일이 많아졌지만, 그에 걸맞는 법률 서비스가 적어 안타까웠다”며 “한인이나 둘루스 시민들이 공정한 재판과 법적 서비스를 받을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취임 소감을 밝혔다.

15일 둘루스시 유일한 한인 판사로 취임한 이정헌(62)씨는 한인으로서 여러가지 ‘최초’ 타이틀을 갖고 있다.

지난1983년 조지아주에서 한인으로서는 처음으로 변호사 자격을 취득했으며, 1999년에는 아시안으로서는 처음으로 귀넷 카운티 판사 취임했다. 또 지난 2004년 한인 최초 조지아주 법원 판사 선거 출마 기록도 갖고 있다.

그는 1.5세 한인의 시초다. 10살 때인 1959년 미국으로 이민온 뒤 어려운 가정형편 속에서 어머니 이옥련 씨 슬하에서 성장했다.

영어를 배우며 미국인으로 변해가던 그는 중학교 시절 큰 변화를 겪는다. 중학교 기숙사에서 도시락으로 김밥을 먹다가 이를 놀리던 백인 학생과 시비가 붙은 것. “인종차별과 언어문제로 고통받아서는 안되겠다”며 한국무술인 태권도를 배우기 시작했다.

호신용으로 배운 태권도가 어느새 6단이 됐고, 이후 학업에도 큰 도움이 됐다. 낮에는 일리노이대학 정치학과, 미주리대학 교육석사를 공부하며, 밤에는 태권도 사범으로 학비를 벌었다.

그는 “동료 대학생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다 보니 얕보는 사람도 없고 모두가 친해졌다. 미국에 살아도 한국인이 되라는 어머니의 가르침을 새삼 실감했다"고 회고했다.

이 판사는 이후 1979년 조지아로 이사와 로스쿨을 거쳐 1983년 조지아주 변호사 자격증을 취득했다. 조지아주 최초의 한인변호사였다. 한인들의 의뢰가 많았지만 한가지 문제가 생겼다. 한국말이 서툴렀던 것이다. 언어장벽에 부딛힌 이 변호사는 한국 드라마 비디오를 수십번 반복해 청취하며 한국말을 공부했고, 지금은 유창한 한국말을 구사한다.

“‘조선왕조 오백년’을 열심히 봤다. 높임말과 한국 예절을 배우기에 가장 좋은 교재”라고 그는 털어놓았다.

이 판사는 이후 애틀랜타 한인회 법률고문, 한국학교 이사 등 한인사회는 물론, 귀넷메디컬센터 이사, 미국암센터협회 이사 등 지역사회에서도 활발하게 봉사했으며, 마침내 1999년 조지아주 최초로 아시아계 판사에 취임했다.

그는 “어머니는 제가 꼭 판사가 돼야 한다며 이름도 ‘바를정, 법 헌’이라고 지었다”며 “어머니 살아생전 판사가 된 모습을 보여드린 것이 자랑스럽다”고 회고했다.

한인 1.5세인 그는 2세들의 ‘아메리칸 드림’ 돕기에 앞장 설 예정이다. 지난해부터 한미장학재단의 전국이사장을 맡아 한인 유망주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이 판사는 “제가 어릴때만 하더라도 한국학교가 없어 한국말을 못배웠고, 김밥을 먹으면 놀림을 받았다”며 “지금 2세들은 한국을 배우기에 매우 좋은 여건이다. 많이 배우고 한국인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이종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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