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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아빠 살아만 계세요” 밀양 효부 야시마의 기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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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야시마 가즈코

경남 밀양시 청도면에 사는 일본인 며느리 야시마 가즈코(八島和子·41)는 며칠째 신문과 TV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마음속으로는 줄곧 기도만 하고 있다. “엄마·아빠, 힘내세요. 손자 얼굴 꼭 보여 드릴게요.” 야시마의 고향은 이번 동일본 대지진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미야기(宮城)현이다.

지진이 발생한 지난 11일 오후 야시마는 열 살, 아홉 살 두 아이를 데리고 일본 센다이(仙臺)행 비행기를 타러 인천공항으로 가는 중이었다.

12년 전 한국으로 시집 온 이후 단 한번밖에 찾지 못했던 친정이다. 엄마는 4년 만의 귀향에, 예쁜 옷을 차려입은 아이들은 처음 가볼 외갓집 생각에 들떠 있었다. 인천행 기차에 오르기 직전에 “일본 동북부, 지진”이라는 긴급 뉴스를 봤다. 지진이 잦은 일본이어서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기차 안에서 야시마의 전화기는 불이 났다. “일본 갈 때가 아니다”며 가족·친구들이 만류했다. 그녀는 항공편을 취소하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야시마는 청도면에서 이름난 효부다. 지체장애 2급으로 하반신이 마비된 시어머니(81)와 노환의 시아버지(79)를 극진히 모셔 2008년에는 밀양시 시민대상 효행상을 받았다. 대소변을 10년 넘게 받아주는 며느리를 시어머니는 친딸로 여긴다. 하지만 칭찬과 상을 받을 때도 야시마의 마음 한쪽은 아렸다.

1999년 큰딸을 한국으로 시집 보내며 걱정하고 서운해했던 친정 부모님이 자꾸만 생각났다. 낯선 한국에 적응하랴, 시부모님 모시랴, 아이들 키우랴 정신이 없어 2007년 할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딱 한번 친정에 다녀왔다. 미야기현 최남단 마루모리(丸森)정에 사는 부모님도 농사일에 바빠 큰딸 사는 모습을 보러 오지 못했다. 외손자들도 사진으로만 봤다. “100점짜리 며느리라지만 딸로서 낙제는 아닐까?” 야시마는 매번 마음에 걸렸다. 손자들도 품에 안겨 드리고, 못다한 효도 하겠다고 큰 마음 먹고 나선 이번 친정 길은 대지진으로 막히고 말았다.

 부모님과는 아직 연락이 되지 않는다. 집 전화도 휴대전화도 불통이다. 지진 이틀 전인 9일 아버지와 통화했었다. 어머니는 아이들 오면 맛난 것 해줘야겠다며 장 보러 가신다고 했다. 하지만 연락이 되지 않아 불안감이 엄습한다.

 야시마의 기억 속 미야기현은 그저 아름다운 곳이다. 어릴 때 자주 놀러가 해수욕을 즐긴 여름의 해변가가 이렇게 되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다.

 ‘메이와쿠(迷惑)의 힘’. 차분히 질서를 지키는 일본 시민들의 모습을 언론을 통해 보고 있다. 극한 상황에서도 ‘나만 힘든 게 아냐’ 생각하며 서로 참고 배려하고 있을 거다. 맞아, 일본은 그런 나라였지. 야시마의 간절한 기도는 다시 고향을 향한다.

심서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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