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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생쥐 김치, 밑창 빠진 군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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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차두현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

군대의 각종 화기류에 사용되는 주요 광학장비 부품 수입단가를 부풀리는 등의 수법으로 수십억원에 달하는 돈을 빼돌린 일부 방산업체 대표와 하청업체 임직원들이 법의 심판을 받게 되었다. 우리의 영공 방위에 핵심적 전력의 하나인 대공포에 불량 부품이 납품되었다는 의혹이 제기된 지 불과 한 달여 만의 일이다.

군납 비리는 군의 전투력 손실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결코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일이다. 군납 비리는 무기나 장비류에 국한되지 않고 최근에는 생쥐 김치, 밑창 떨어진 군화 등 전방위로 확산되고 있어 큰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군납 비리는 제도적 미비점, 주요 정책결정자들의 의지 부족, 특정 이해당사자 간의 고질적 유착관계 등에서 생긴다. 그러나 집요할 정도로 반복되는 군납 비리의 근절을 위해서는 이 문제를 대하는 우리 사회 전반의 자세 자체를 재점검해 볼 필요가 있다. 군납 비리는 어제 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충격적인 군납 비리가 발생할 때마다 모두가 목소리를 높여 단호한 조치를 요구하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는 우리 사회 전체의 습관적인 건망증을 먼저 탓해야 하는 것은 아닐까.

 군납은 국방의 기초체력을 유지하는 요소며, 기초체력이 부실한 군은 아무리 첨단 장비로 무장하더라도 결코 ‘선진정예강군’이 될 수 없다. 국방과 관련된 부패나 비리가 한 국가의 중대한 쇠락이나 패망으로 이어진 교훈들을 우리는 너무 가벼이 여기는 것은 아닐까. 이제는 군납 비리에 대해 더욱 엄정하고 추상같은 대응이 가능한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도록 지혜와 중지를 모아야 할 때다.

방위산업에 대한 원가 부정행위의 방지, 부당 이익을 훨씬 상회하는 과징금 제도의 도입, 비리를 저지른 업체와 임직원에 대한 비리 이력 데이터베이스의 구축·관리, 일정 수준 이상의 군납 비리에 대한 가중처벌 등 비리의 동기를 차단하기 위한 다양한 제도적 장치들이 유기적으로 결합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정부와 국회가 공통의 문제인식 하에서 필요한 정책적인 조치들과 입법상의 소요들을 함께 해결해 나가야 한다. 국회 차원에서도 군납 문제에 대한 상시적인 토의와 검증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비리를 저지른 사람들이 사회 내에서 더 이상 발붙이기 어려운 분위기와 문화가 성숙돼야 한다.

 국방당국 역시 자식들을 군에 보낸 어버이의 심정에서 이 문제를 접근해야 한다. 따라서 무기 및 장비, 그리고 급식의 핵심 수요자인 장병들의 눈높이에서 군납 문제의 해결을 모색해야 한다.

이미 시행되고 있는 조치이기는 하지만, 차제에 장병들을 대상으로 한 군납품 관련 선호도 조사 및 품질 만족도 조사 등이 더욱 확대돼야 하며, 군납 물품과 관련된 고충처리 장치 역시 제도화돼야 한다.

차두현 한국국방연구원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