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레니엄특집.하] 새 천년 한국스포츠 `문 활짝'

중앙일보

입력

◇국경없는 선수 이동에 걸림돌 많아

정치, 경제, 문화 등 모든 분야에서 국경이 사라지는 세계화가 빠르게 진행될 새천년에 이같은 탈국가적 양상은 스포츠도 예외가 아니다.

이미 한국선수들이 세계무대로 나가고 스포츠 선진국 선수들의 플레이를 국내무대에서도 손쉽게 볼 수 있는 해외용병시대가 열린지 오래지만 2000년대는 국내 선수의 해외진출과 외국선수의 수입이 더욱 활발해질 전망이다.

미국 프로야구 전문가들은 한국을 중남미 다음 가는 신인 발굴의 보고로 공공연하게 여기고 있고 일본 프로축구 구단들은 수시로 한국 선수들을 둘러보고 가는 실정이다.

한국에서도 농구와 야구, 축구에서는 용병으로 불리는 외국인 선수들이 팀 전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고 일부 선수는 팬클럽까지 갖고 있을만큼 한국에 뿌리를 내렸다.

앞으로 배구와 아이스하키 등 프로화를 노리는 종목에서는 장기적 과제로 외국인 선수 수입을 맨먼저 거론할만큼 국경없는 선수 수급은 일반화됐다.

그러나 이같은 한국스포츠의 세계화에 여전히 걸림돌은 많다. 우선 한국선수들의 해외 무대 진출의 가장 큰 장애요인은 바로 병역문제.

메이저리그에서 3년 연속 10승을 올리면서 정상급 투수로 자리잡은 박찬호(LA다저스)가 방콕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따지 못했으면 꼼짝없이 군입대로 3년간 공백을 겪을 뻔한 것은 한국 남자선수가 지닌 고민을 웅변한다.

어떤 식으로든 병역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한국의 스포츠 스타는 해외의 큰무대에서 뛰어보겠다는 포부를 펼칠 수가 없다. 이 때문에 미국이나 일본의 일부 프로스포츠 에이전트들은 병역이 아직 해결되지 않은 선수들에 대해서는 따로 옵션을 거는 `노련함'마저 보이고 있다.

이와 함께 낙후된 한국 스포츠 매니지먼트의 허점을 노리는 비정상 에이전트들의 난립과 이에 따른 잦은 말썽도 우수 선수의 앞길을 막는 요인이 되고 있다. 박찬호의 성공 이후 미국 메이저리그에 입단시켜주겠다는 달콤한 약속을 내세워어린 야구선수에게 접근하는 '사이비 에이전트'가 폭발적으로 늘어난 것은 고교 야구에서는 이미 구문이다.

한국축구의 간판 스트라이커 최용수의 영국 프리미어리그 진출에서 나타난 에이전트 업무의 낙후성은 유망한 선수가 해외 진출이라는 꿈을 이루기는커녕 오히려 앞길을 막아버리는 부작용을 낳기도 했다.

국내 구단의 극단적인 이기주의도 유능한 선수가 큰 무대에서 활약할 기회를 빼앗는 대표적 요인. 올해 프로야구 현대는 정민태를 일본으로 보내기 위해 야구 규약까지 바꾸려는무리수를 뒀지만 정민태를 아끼는 팬들은 그를 지난해 한국시리즈 우승 직후 풀어줬으면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 것이라고 안타까워 하고 있다.

일본 열도를 정복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선동열 역시 구단주와의 정면대결도 불사하는 `몽니'를 부려서야 겨우 해외 진출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한국 선수들의 해외 진출에 가장 큰 장애요인은 무엇보다 문화적 차이와 생활습관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분석도 있다.

특히 골프나 테니스 등 투어프로생활은 경쟁자인 동시에 동료인 각국 선수들과스스럼없이 어울리는 문화적 개방성을 갖추지 않는 한 정상권으로 진입하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박세리와 김미현이 미국 여자프로골프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개방성 때문이나 아직도 한국선수들은 국제대회때마다 고추장과 김치를 싸들고 다니는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또 스포츠 세계화에서 나타나는 문제로 수출초과 현상을 빼놓을 수 없다. 20만달러 이하를 받는 프로야구 용병들이나 10만달러의 연봉으로 한국무대를 주름잡고 있는 프로농구 외국인선수들은 본바닥에서는 B급을 넘어설 수 없는 선수들이다.

이들은 한국선수들보다 월등한 기량을 보이고는 있으나 각종 미디어를 통해 눈높이가 한껏 높아진 팬들이 언제까지 이들 B급 이하 선수들의 플레이에 만족할지는 미지수다.

한국은 세계 각국에서 몰려온 이들 이류선수들의 경연장이 되고 있는 반면 한국의 우수선수들은 하나같이 외국으로만 몰려나가는 현상이 계속된다면 한국프로스포츠는 고사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이미 일선 지도자들 사이에는 중요한 화두가 된지 오래다.

일부 지도자는 `보낸만큼 좋은 선수를 데려오자'는 주장을 내놓고 있으나 스포츠를 `사업'이 아닌 `놀이'로만 보는 구태의연한 인식이 굳어져 있는 현실속에서 목소리는 작을 수 밖에 없다. [서울=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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