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덮친 럭비 전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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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지난 12일(한국시간) 런던의 트위크넘 스타디움에서 열린 식스 네이션스 경기 중 트라이 득점에 성공한 뒤 자기 진영으로 돌아가는 제임스 해스켈(26·잉글랜드)의 뒷모습. 잉글랜드는 이날 트라이 4개를 기록한 크리스 애시튼의 활약에 힘입어 이탈리아를 59-13으로 대파했다. [런던 로이터=연합뉴스]


잉글랜드와 프랑스는 영토와 왕위 계승을 두고 백년 전쟁(1337~1453년)을 벌인 앙숙이다. 죽고 죽이는 중세의 전쟁은 역사 속에만 남아 있다. 하지만 두 나라는 또 다른 백년전쟁을 계속해 왔다. 이 전쟁은 정해진 승자가 없는 영원한 승부다.

 잉글랜드와 프랑스는 26일(한국시간) 영국 런던의 트위크넘 스타디움에서 식스 네이션스(Six Nations) 경기를 한다. 매년 2~3월 열리는 식스 네이션스는 잉글랜드·프랑스·아일랜드·웨일스·스코틀랜드·이탈리아 등 유럽 럭비 강호 6개국이 풀리그로 겨루는 대회다. 본래 영국 연방 4개국이 겨루는 홈 네이션스로 출발(1883년)했고, 나중에 프랑스(1910년)와 이탈리아(2000년)가 가세했다.

지난 12일(한국시간)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에서 열린 식스 네이션스에서 웨일스의 앨런 존스(오른쪽)가 공중에서 볼을 따내고 있다. [에든버러 AP=연합뉴스]

 럭비는 축구와 함께 유럽에서 가장 인기 있는 스포츠다. 축구가 대중적인 노동자의 스포츠라면 럭비는 귀족 스포츠다. 필드 위에서 구르고 부딪치는 험한 운동으로 보이지만 상대에 대한 존중과 신사도를 강조한다. 이튼 스쿨 등 명문 학교에서는 빠짐없이 럭비 과목을 가르친다.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대도 정기적으로 럭비 대항전을 한다. 유럽인에게 럭비는 스포츠 이상의 의미를 지닌 운동이다.

 프랑스가 식스 네이션스에 가세한 뒤 100년이 지났다. 프랑스는 잉글랜드와 지독한 라이벌전을 거듭해 왔다. 원년 참가팀 잉글랜드는 25차례, 프랑스는 17차례 우승컵을 들어올렸다. 올해도 우승후보로 꼽히는 두 팀은 2승으로 공동 선두고, 26일 경기는 사실상의 결승전이다. 8만2000석의 트위크넘 스타디움 입장권은 일찌감치 매진됐다. 경기는 ‘갓 세이브 더 퀸’과 ‘라 마르세예즈’를 누가 더 크게 부르느냐로 시작할 것이다. 유럽 17개국을 비롯해 30개국에 생중계된다.

 ◆‘어린 천재’냐 ‘베테랑 야수’냐=2003년 이후 우승컵과 인연이 없었던 럭비 종주국 잉글랜드는 올해야말로 우승할 기회라고 기대하고 있다. 잉글랜드는 현재 두 경기에서 85득점으로 폭발적인 공격력을 선보이고 있다. 그 중심에 크리스 애시튼(23)이 있다.

 애시튼은 대표팀에 선발된 지 1년이 채 안 된 신예지만 ‘천재’라는 찬사 속에 잉글랜드를 이끌고 있다. 타고난 빠른 발과 지칠 줄 모르는 질주로 상대 수비를 무너뜨린 다음 트라이(볼을 들고 상대 골라인을 통과해 득점하는 것)하는 모습은 눈이 부실 정도다. 두 경기에서 6트라이(30득점)를 기록해 득점 부문 단독 선두다.

 애시튼의 전매특허는 ‘다이빙 세리머니’. 트라이를 할 때 양팔을 새처럼 벌리고 온몸을 날리는 것이다. 한때 이를 두고 ‘상대팀을 비하하는 것’이라는 논란이 일기도 했다. 럭비는 상대에 대한 존중을 중시하는 스포츠로 세리머니도 가급적 자제하는 것이 매너다. 그러나 잉글랜드 언론은 ‘경기를 즐기고 있을 뿐’이라며 애시튼 편을 들었다. 프랑스와의 경기에서도 그의 다이빙 세리머니를 볼 수 있을지 주목된다.

 지난 대회 우승팀 프랑스에는 세바스티앙 샤발(34)이 있다. 샤발은 7년째 식스 네이션스에 참가해 온 베테랑이며 프랑스의 국민 스타다. 116㎏의 거구와 얼굴의 절반을 뒤덮은 수염 때문에 ‘야수’로 불린다. 투박한 외모와는 달리 정교한 플레이로 공수를 조율하며, 세밀하고 정확한 패스로 팀 승리를 이끄는 전력의 핵이다. 그는 “잉글랜드전은 앞선 두 경기와 다른 각오로 임할 것”이라고 벼르고 있다.

◆대회 속의 대회 ‘트리플 크라운’=식스 네이션스에는 우승만큼이나 치열한 타이틀 쟁탈전이 있다. 영국 연방 3개국과 아일랜드만의 자존심 대결 ‘트리플 크라운’이다. 트리플 크라운은 잉글랜드·아일랜드·웨일스·스코틀랜드 중 한 나라가 다른 세 나라를 이기는 경우를 말한다.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않는 3개 연방과 지난한 투쟁 끝에 독립을 이뤄낸 아일랜드가 맞붙다 보니 자존심 대결이 치열하다.

장주영 기자

경기 뒤엔 내 편 네 편 없는 럭비정신
그래서, 함께 씻으라고 샤워장 딱 하나

럭비와 미식축구의 다른 점



미식축구는 11명의 선수가 뛴다. 럭비는 7인제와 15인제가 있다.

 미식축구는 보호장구와 헬멧을 착용하지만 럭비는 특별한 보호장구가 없다. 선수에 따라 머리를 보호하는 헤드기어를 착용하는 경우는 있다. 미식축구 공은 끝이 뾰족하고 럭비공은 뭉뚝하다.

미식축구의 백미는 후방의 쿼터백이 전방으로 던지는 전진패스에 이은 득점이다. 패스를 받지 못해 공이 땅에 떨어지는 경우에는 플레이가 중단된다. 럭비는 오프사이드 규칙이 엄격해 후방패스만 허용한다. 공이 땅에 떨어지면 주워서 패스를 하거나 킥을 통해 플레이를 이어간다.

 미식축구는 터치다운(6점)과 이어지는 킥(1점), 럭비는 트라이(5점)와 이어지는 킥(2점)으로 점수를 낸다. 터치다운이나 트라이를 포기하고 차는 필드킥은 3점이다.

 미식축구는 승자가 영광을 독점한다. 럭비는 ‘경기가 끝나면 편이 따로 없다’는 노 사이드(No side) 정신이 기본이다. 경기가 끝난 후에는 진 팀이 양쪽으로 늘어서 이긴 팀이 퇴장할 때 박수를 쳐주는 전통이 있다. 럭비 경기장에는 샤워장이 하나뿐이다. 양팀 선수가 함께 땀을 씻는다.

장주영 기자

◆식스 네이션스 챔피언십 럭비대회=1883년 잉글랜드·웨일스·스코틀랜드·아일랜드 등이 참가해 ‘홈 네이션스’로 시작됐다. 후에 프랑스(1910년)와 이탈리아(2000년)가 합류, 식스 네이션스로 발전했다. 뉴질랜드·호주·남아프리카공화국이 매년 리그전을 펼치는 트라이 네이션스와 함께 식스 네이션스는 세계 럭비를 이끌어 가는 양대 리그로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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