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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내가 읽은 책] 윤구병씨의 '잡초는 없다'

중앙일보

입력

불과 2~3년만에 인터넷이 우리 생활 속으로 깊숙이 들어와 디지털 경제라는 말이 생소하지 않은 시대가 됐다. 새로운 밀레니엄은 디지털 시대이고 우리는 지금 디지털 혁명, 인터넷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유럽 등의 선진국들은 정보화, 디지털 시대를 민·관이 거의 죽을 힘을 다해 준비해 나가고 있는 데 반해 우리나라는 지난 30년간의 축약된 산업화 과정의 부작용으로 IMF를 맞았고 그 이후 계속되는 구조조정의 여파, 만연한 부정부패, 상호불신, 민생과는 유리된 채 정쟁만 계속하는 3류 정치꾼들과 무너지는 교육현장들로 인해 그야말로 혼돈과 불확실성의 시대를 마감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30여년 만에 이루어낸 산업화의 공도 이루 말할 수 없이 많지만 그에 못지않은 대표적인 과를 든다면 바로 획일화다. 효율성만 강조하는, 결과가 좋으면 다 좋은,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획일화된 사회. 소위 붕어빵 우등생만 양산해온 사회체제, 그로 인한 교육시스템의 붕괴는 21세기 디지털 시대를 맞는 오늘 우리 한민족의 치명적인 약점이 되고 있다.

인터넷은 지구를 시·공간적 제약 없이 하나로 묶어 주는 지구 신경망이다. 다른 말로 인터넷, 디지털 사회는 Global 개념으로 모든 것이 순식간에 묶이고 또 개방되는 사회다. 그동안 수입선 다변화라거나 외환관리법, 고관세 등으로 보호되던 국가·국경개념이 더이상 의미가 없어지는 사회가 된다는 의미인 것이다.

거대한 새로운 디지털 혁명의 파고 아래서 우리의 정체성을 지키기에는 우리의 교육과 의식과 문화와 사회체제가 너무나 경직되어 있고 획일화돼 있다. 바로 다양성의 부족이 21세기를 눈앞에 둔 우리 정체성의 위기인 것이다.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교육, 사회, 문화 시스템으로는 21세기를 살아갈 수 없다. 인터넷 인프라도 중요하고 e-Business 개념 도입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21세기의 화두는 바로 다양성이다.

98년에 출판되었지만 아직도 서점가의 스테디셀러로 자리잡고 있는 “잡초는 없다”라는 책은 서울대 철학과를 나와 충북대 철학과 교수를 지낸 윤구병씨가 모든 것을 버리고 아름다운(그나마 채석장과 새만금 간척사업으로 자연이 파괴되어 가는)
변산에서 농사를 지으면서 변산공동체학교를 열고 새로운 생활과 교육을 시도하는 이야기를 쓴 글이다.

21세기의 초입에서 답답하리만큼 자급자족을 강조하는 저자의 고집에는 공감하지 않지만 책 속에서 그가 몸으로 말하는 메시지들은 정말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콩은 언제 심어요?”라는 물음에 “올콩은 감꽃 필 때 심고 메주콩은 감꽃이 질 때 심는 거여”라는 할머니의 대답에서 획일화된 우리의 사고에 대한 반성과, 심은 농작물 외에는 모두 잡초로 치부해 제초제를 뿌리거나 기를 쓰고 뽑아 버리는 것이 사실 알고 보면 망초·씀바귀·쇠비름·마디풀 같은 약초나 나물이라는 것에서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우리의 한계를 보게 된다.

다양성은 21세기를 버텨낼 우리 민족의 키워드다. 김지룡씨의 “나는 일본 문화가 재미있다”라는 베스트셀러 이후 나는 이 “잡초는 없다”라는 책에서 다양성이란 메시지를 다시금 읽을 수 있었다. 디지털 세상을 살아가야 할 이 땅의 많은 분들에게 감히 일독을 추천하는 바이다.

염진섭 야후코리아(주)
사장

[월간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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