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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원 일하게 만들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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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해석
호남취재팀장

지난해 12월 31일 오전 광주발 용산행 KTX. 광주광역시 체육지원과장은 문화체육관광부로 출장을 가고 있었다. 야구장 건설 때 지원받기로 한 복권사업 수익금이 깎이는 걸 막기 위해서다.

 그러나 수익금 배분 심의위원회장에 들어갈 수조차 없다고 해 막막했다. 마침 같은 열차에 탄 국회의원을 발견한 그는 사정을 털어놓았다. 그 의원은 휴대전화를 들고 객차 연결 통로로 나갔다. 그리고 문화부 체육국장과 차관 등에게 전화해 “원래대로 100억원을 간청 드린다”고 매달렸다. 열차가 용산에 닿기 전에 차관한테서 전화가 왔다. “의원님, 깎이지 않도록 조처했습니다.” 열차 안에서 우연히 만난 공무원의 지원 요청을 국회의원이 즉석에서 전화기를 붙들고 해결해 준 것이다.

 그 의원이 광주 사업만 챙기는 게 아니다. 고향(곡성군)을 포함한 전남은 물론 전북의 일에도 열과 성을 다하고 있다. 지역 언론들은 ‘호남 예산 지킴이’라고 부른다. 공무원들은 “큰 도움을 받았다. 공을 잊을 수 없다”고 말한다. “호남 각지의 민원이 몰려 북새통인데도, 의원이나 사무실 직원 모두 친절하다”고도 한다.

 호남에 지역구를 가진 국회의원은 광주 8명, 전남 11명, 전북 11명 등 모두 30명이다. 전북 정읍 1명(무소속)을 빼곤 다 민주당 소속이다. 그 의원은 누구일까. 한나라당 이정현 의원이다.

 이 의원은 호남 지역구 의원이 아니다. 현 국회에 비례대표로 ‘겨우’ 진출했다. 2004년 총선 때 광주광역시에서 출마했지만 참패했다. 6만9882명 중 720명(1%)만이 그에게 표를 줬다. 호남권 민주당 의원들의 득표율은 높게는 88.7%, 낮아도 50.4%다. 주민들이 몰아 준 성원으로 보면, 민주당 의원들은 이 의원보다 수십 배 지역민들을 섬겨야 한다. 그러나 지역에서의 평가는 정반대다.

 “현안에 대해 지원을 부탁하면 ‘알아보겠다’고 말하곤 그만이다.” “자기 지역구 사업이나 신경을 좀 쓸 뿐 다른 지역 것은 쳐다 보지도 않는다.” “누리기만 하지, 일은 하지 않는다.” 한 부이사관급 공무원은 “의원 사무실에 가도 앉으라는 말조차 않는다. 무시당하는 느낌이다”라고 말했다.

 민주당 국회의원들이 이렇게 된 이유는 간단하다. 경쟁이 없기 때문이다. 호남에 민주당 깃발만 꽂으면 당선은 떼놓은 당상이다. 이러니 호남지역 국회의원들은 공천권을 가진 높은 사람에게는 굽실거리지만, 정작 자신에게 표를 준 유권자들에게는 소홀하다. 여기엔 유권자의 책임도 있다. 빵맛이 떨어지고 주인이 불친절하다고 불평하면서도 계속 ‘상표’만 보고 그 제과점을 찾는 것은 현명한 소비행위가 아니다. 빵집 주인에게 항의하거나 다른 제과점을 찾아감으로써 경쟁을 유도하고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

 어느 부문이든 경쟁이 없으면, 발전할 수 없다. 정치도 예외가 아니다. 내년 4월 국회의원 선거를 향한 후보자들의 움직임이 점차 활발해지고 있다. 유권자들도 어떤 게 현명한 선택인지 생각해 봐야 할 때다.

이해석 호남취재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