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 대만 ‘장쉐량 기념관’건립 돕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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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중국 현대사의 물줄기를 바꾼 ‘시안(西安)사변’의 주인공 장쉐량(張學良·장학량·사진)의 대만 고택(古宅) 복원과 기념관 건립에 중국이 재정 지원에 나섰다. 중국 관영 신화통신은 20일 랴오닝(遼寧)성 천정가오(陳政高) 성장이 대만 신주(新竹)현 우펑(五峰)향에 건립 중인 장쉐량 기념관에 500만 위안(약 8억5000만원)을 전달했다고 보도했다.

 신주현은 2008년 중국과 대만 관계가 해빙을 맞으면서 대륙 사람들의 관심이 높아지자 장이 국민당 정보요원들의 감시 아래 연금됐던 고택을 복원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 기념관 기공식에서 신주현 주민들은 ‘당신의 고향은 랴오닝, 우리의 고향은 신주현. 예전부터 한 집안이었으니 지금도 한 집안’이라는 노래로 장의 넋을 기렸다.

 장은 만주지방을 장악했던 군벌 장쭤린(張作霖)의 장남으로 아버지의 군권을 이어받아 28세에 ‘동북왕(東北王)’ ‘젊은 원수(少帥)’로 불렸던 인물이다. 당시 중국은 장제스(將介石·장개석)·장쉐량·마오쩌둥(毛澤東·모택동)으로 삼분됐었다. 국민당 군대의 부사령관으로 장제스에 이은 2인자 반열에 올랐다.

 장은 국민당 정부의 서북지역 공산당 토벌 작전의 부사령관으로 재임하던 1936년 공산당 토벌과 항일전쟁의 선후를 놓고 장제스와 갈등을 빚었다. 결국 그해 12월 12일 공산당 토벌을 격려하기 위해 시안을 찾은 장제스를 구금하는 시안사변을 일으켰다. 이 사건을 계기로 장제스와 공산당 대표로 나온 저우언라이(周恩來·주은래)는 항일전선에 공동 대응한다는 국공합작에 합의했다. 국민당의 토벌로 고사 위기에 몰린 공산당은 기사회생해 결국 중국 대륙을 장악했다.

 하지만 장은 반세기가 넘는 감시와 연금 속에서 비극적 삶을 살았다. 쿠데타나 다름없는 항명을 일으킨 장에게 난징의 특별군사법정은 징역 10년을 선고했다. 장제스의 지시로 특별사면을 받은 장은 1937년 1월 장제스의 고향인 저장성 닝보의 시커우로 이송돼 국민당군 헌병과 정보요원들의 감시 속에 연금 생활을 시작했다. 46년 국공내전을 앞두고 국민당 정보기관은 그의 연금지를 대만 신주현으로 옮겼다. 사실상의 연금 해제는 특별사면 이후 53년6개월 만인 90년 6월 1일 이뤄졌다. 그는 95년 동생이 있는 하와이로 이주해 살다 2001년 10월 생을 마감했다.

홍콩=정용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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