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분석] 중동 리스크에 두바이유 100달러 초읽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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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세계 원유 시장엔 3대 유종이 있다. 뉴욕상업거래소(NYMEX)에서 거래되는 서부 텍사스산 원유(WTI), 런던 석유거래소(ICE)에서 팔리는 북해산 브렌트유, 중동에서 생산되는 두바이유다.

 그런데 요즘 원유 시장에서 이상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시장의 벤치마크로 활용되며 가장 비싸게 팔렸던 WTI 가격이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반면 WTI보다 배럴당 2~5달러 싸게 가격이 형성됐던 브렌트유와 두바이유는 초강세를 보이고 있다.

 두바이유는 100달러 돌파 초읽기에 들어갔고 브렌트유는 이미 100달러를 넘어섰다. 17일 거래된 두바이유 현물 가격은 전일보다 배럴당 1달러53센트(1.56%) 오른 99달러56센트였다. 이는 2008년 9월 8일(배럴당 101달러83센트) 이후 29개월 만에 기록한 최고가다. 이날 브렌트유(4월 인도분)는 1달러19센트(1.15%) 내린 102달러59센트에 거래됐다.

 하지만 같은 날 거래된 WTI(3월 인도분) 가격은 전날보다 약간(1달러37센트) 오른 86달러36센트였다. 브렌트유와 WTI의 가격 차이는 16달러23센트, 두바이유와는 13달러20센트에 달했다. 14일에는 브렌트유와 WTI의 가격 차이가 18달러30센트로 사상 최대치를 갈아치우기도 했다.

 그동안 WTI는 유황 함량이 적고 질이 좋아 ‘대장’ 원유로 통했다.

하지만 미국 경기 침체로 WTI 가격 하락 압력이 심화되면서 지난해 7월부터 가격 역전 현상이 나타났다. 최근에는 브렌트유와 두바이유가 크게 올라 이들 원유와 가격 차이는 더욱 커지고 있다.

 이렇게 가격 차이가 많이 나는 이유로 대륙별 원유 수요 차이와 지정학적 불안 요인이 꼽힌다. WTI는 미국에서, 브렌트유는 유럽에서, 두바이유는 아시아에서 주로 소비된다. 한국은 원유의 80%가량을 중동 지역에서 수입한다.

 미국은 현재 경기가 본격 회복 국면에 접어들지도 않았고 원유 재고도 풍부하다. 2월 첫째 주 미국 원유 재고량은 3억4505만7000배럴로 4주 연속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와 달리 유럽과 아시아는 원유 수입이 늘고 있다. 우라늄 농축과 관련해 이란 제재에 동참한 유럽·아시아 국가가 이란산 원유에서 브렌트유와 두바이유로 수입처를 바꾸고 있는 것도 가격 강세의 주요 원인이다. 여기에 튀니지와 이집트에서 시작된 민주화 시위가 다른 중동지역으로 확산하면서 두바이유와 브렌트유가 크게 오르고 있다.

 김영은 HMC투자증권 선임연구원은 “이집트 주변 국가의 경우 원유 가격이 브렌트유 계약 가격과 연동돼 있기 때문에 이들 원유는 중동사태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며 “WTI와 다른 원유의 가격 역전 현상은 당분간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두바이유의 가파른 상승은 아시아, 특히 한국 경제의 부담 증가로 이어진다. 모건스탠리는 최근 보고서에서 신흥 아시아 국가 가운데 유가 변동에 가장 민감한 국가로 한국을 꼽았다. 유가가 배럴당 10달러 상승하면 국내 무역수지가 국내총생산(GDP) 대비 1% 정도 악화하고, 국내 연료 가격이 10% 상승하면 물가는 0.9%포인트 오르는 효과가 있다고 분석했다.

 박상현 하이투자증권 연구원은 “공교롭게도 WTI와 두바이유의 가격 차이가 크게 벌어진 시점부터 국내 증시에서 외국인 매도 확대가 나타났다”며 “유가 급등으로 인한 인플레이션 압력이 국내 기업의 이익을 훼손시킬 수 있다는 우려감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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