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터움=thickness? 용어의 깊이는 어디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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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서양 바둑의 역사도 오래됐는데 왜 바둑팬은 빠르게 늘지 않는 것일까. 가장 큰 원인은 역시 ‘언어’다. 우리의 바둑 보급은 주로 ‘기술’ 위주로 되어 있지만 그 매력은 한계가 있고 소수의 고수들에게만 의미가 있다. 지난해 세계 각국을 헤집고 다닌 김성룡 9단에 따르면 요즘 유럽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바둑책은 의외로 캐나다 교민이 쓴 『바둑연가』라는 소설이라고 한다. 한국의 기술보다는 한국의 스토리, 바둑의 스토리에 굶주린(?) 유럽 팬들이 모처럼의 한국 영어소설에 반한 것이다. 기술 서적은 많은데 수(手) 뒤의 심오한 얘기를 전해주는 번역서는 없다. 고급의 영어로 바둑의 깊이를 전해줄 수 있는 인력도 한·중·일을 통틀어 몇 명 되지 않는다.

 바둑용어에도 문제가 있다. 바둑용어는 초창기엔 주로 일본어였으나 점차 영어로 대치되었다. 쌍립=bamboo joint, 승부수=do or die move 식이다. 여기까진 그럴듯한데 두터움=thickness는 아무리 봐도 엉터리다.

 바둑에서 두터움은 모든 고수들이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다. 돌의 배합이 매우 효율적이면서도(중복이 아니라) 쉽게 허물어지지 않는 모습을 가리키는데 이 는 공격과 수비의 원동력 그 자체라 할 수 있다. 일본의 후지샤와 슈코 9단은 두터움을 “굽는 빵처럼 서서히 부풀어 오르는 잠재력”이라 표현한 바 있다. 이창호 9단은 “두터움을 유지하면서 실리에서도 뒤지지 않는 바둑”을 도달하기 힘든 최고의 경지로 꼽았다. 이런 두터움을 놓고 칙칙하고 두꺼운 이미지의 thickness를 떠올린다면 영어권에선 두터움, 즉 바둑의 본질에 영영 가까이 갈 수 없을 것이다.

 바둑계 일각에서 한국이 최강자니까 바둑용어도 태권도처럼 한국어를 쓰도록 만들자는 얘기도 나온다. 그러나 그런 주장 역시 용어와 룰의 통합으로 나아가야 할 바둑계를 오히려 분쟁과 혼란으로 몰고 갈 우려가 있다. 종주국 중국과 현대바둑의 종주국을 자처하는 일본이 소 닭 보듯 하고 있다. 이들의 가운데서 힘을 합치도록 만드는 것이 한국의 일이다. 용어나 룰, 바둑 세계화 등을 놓고 한·중·일의 바둑 수뇌부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진지하게 머리를 맞댄 적이 없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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