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칼럼] 수입 검역은 아무리 강화해도 무역장벽 아니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8면

여정성
서울대 교수

자유무역협정(FTA)은 일반적으로 상품의 시장 가격을 하락시키고 다양성을 증가시켜 소비자 후생의 증대에 기여한다. 실제로 한·칠레 FTA 협정 체결 후 돼지고기·해산물·포도 등의 시장가격이 하락했다는 연구결과도 있었다. 그러나 소비자 후생도 적절한 조치가 함께 취해지지 않으면 시장에서 제대로 구현되지 못할 수도 있다.

 우선, 관세 폐지 등에 의한 가격 하락의 이익이 소비자 이익으로 연결되지 못한 채 그대로 유통 과정에서 흡수돼 버릴 수 있다. 칠레와의 FTA 협상 체결 후 와인 가격은 기대만큼 하락하지 않았다. 국내 수입업자들의 과도한 경쟁으로 수입 대상국의 현지 가격이 오를 수도 있다.

 가격은 하락한 듯 보이지만 질 낮은 상품이 넘쳐날 수도 있다. 질 낮은 상품이 소비자의 안전까지 침해하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왜냐하면 지금 우리 소비자들에게는 ‘안전’이 더없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2008년 촛불집회에서 소비자들의 집단행동을 이미 목격한 바 있다. 혹자는 당시 광우병에 대한 소비자의 불안과 우려를 일부 언론의 오보에 의한 비과학적인 행태로 넘겨버리기도 하지만, 이는 단순히 소비자의 무지나 비합리성으로 폄하해 버릴 문제는 아니다. 이제 우리 소비자들에게 식품의 안전, 나아가 날마다 사용하는 상품의 안전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심각한 문제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수입상품의 안전 문제를 검증하는 장치를 강화해 우리의 검역주권을 지켜야 한다. 자국민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일련의 안전 조치는, 세계무역기구(WTO)에서도 무역장벽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검역을 위한 조치를 FTA의 기본 취지에 어긋난 무역장벽인 양 주장하는 수입업자의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규제 완화 측면에서 검역을 최소로 줄이려는 통관 관련 부처의 시도는 시장감시자로서의 책임을 망각한 행위다.

 표시나 광고를 통해 소비자들을 기만하려는 불공정거래행위가 더욱 빈번하게 나타날 수 있다. 품질이 낮거나 안전성이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상품들이 단순히 상표나 낮은 가격을 미끼로 소비자를 유인할 수 없도록 정확한 정보가 충분히 제공돼야 한다.

 이런 우려가 기우였으면 한다. 공급자의 책임 있는 판단과 시장 감시자로서의 정부의 적극적 역할, 그리고 현명한 시장참여자로서의 소비자의 자세를 기대한다.

여정성 서울대 교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