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망치한’ 미국 … 테러와의 전쟁 비상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6면

이집트 정정(政情)이 한창 불안하던 이달 초 미국 국토안보부와 연방수사국(FBI), 뉴욕 경찰청은 뉴욕 월스트리트의 금융기관들에 보안 재점검을 신신당부했다. 예멘에 본부를 둔 알카에다 아라비아 반도 지부가 이곳을 테러 목표로 삼고 있다는 첩보 때문이었다.

 순망치한(脣亡齒寒).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는 고사성어다.

 호스니 무바라크 전 이집트 대통령이 하야한 뒤 미국 정부의 ‘테러와의 전쟁’에 비상이 걸렸다.

 2001년 9·11 이후 ‘테러와의 전쟁’을 시작한 미국 정부에 그동안 가장 긴밀히 협력한 곳이 이집트 정보당국이었다. 이집트 정보당국은 국제사회에서 알카에다를 비롯한 과격 이슬람 원리주의 세력에 대해 뛰어난 정보력을 지닌 것으로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무바라크 정권이 붕괴되는 바람에 이집트와의 정보교류 부족으로 대(對)테러 억지력 저하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미 정부 내에서 커지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13일(현지시간) 테러리즘 전문가들의 분석을 인용해 이집트 혁명 이후 미국과 이집트 정보당국 간 공조 틀이 와해돼 반(反)테러리즘 전선에 타격이 우려된다고 보도했다. 테러리즘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집트 당국은 9·11 테러를 일으킨 알카에다 세력에 관한 정보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가자 지구와 수단 등 미국의 정보망이 취약한 곳에도 촘촘한 정보망을 보유했다. 연간 13억 달러에 달하는 미국의 군사적 지원이 아깝지 않을 만큼 이집트와의 정보 협력은 요긴했다고 한다.

 국무부 관료를 지낸 우드로윌슨센터의 중동전문가 에런 데이비드 밀러 선임연구원은 “이집트의 새 정부가 미국과의 유대를 싫어하는 대중의 목소리에 반응할 경우 대테러리즘 협력 공간은 축소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조지타운대 브루스 호프먼 교수도 “미국은 그동안 이집트를 통해 중동 극단주의 세력의 동향을 파악해 왔다”며 “이제 미국은 과거와 같은 ‘창’(窓)을 갖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내에선 1970년대 말 이란 상황이 ‘재연(再演)되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냉전시대 미국의 가장 큰 적은 소련이었다. 당시 미국의 강력한 동맹국이었던 이란의 팔레비 왕조는 소련의 속내를 파악하는 정보 거점 역할을 했다. 그러나 79년 이슬람 원리주의자 호메이니가 권력을 잡으면서 이 연대는 깨졌다.

워싱턴=김정욱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