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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성재 이마트 상무와 욕실용품 업체 동서P&W 성원서 실장 스토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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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11일 서울 성수동 이마트 생활용품 매장에서 최성재 상무(오른쪽)와 동서P&W의 성원서 실장이 ‘유아 겸용 변기시트’를 살펴보며 웃고 있다. [김도훈 인턴기자]


암 진단을 받은 지 석 달 만에 아버지가 사망했다. 갑작스레 작은 회사를 물려받은 20대 청년. 어떻게 해야 할지 쩔쩔맬 뿐이었다.

 경쟁사들은 호시탐탐 청년의 회사가 문을 닫길 기다렸다. 이때 거래하던 대기업 임원이 구원투수로 나섰다. 임원은 청년을 다독이며 자리 잡을 수 있도록 거래를 이어갔다. 작은 회사는 전보다 더 크고 튼튼해졌다. 드라마 같은 일이 현실에서 일어났다. 동서P&W의 성원서(27) 실장과 신세계 이마트 최성재(52) 상무의 이야기다.

 1989년 설립된 욕실·주방용품 회사 동서P&W와 최 상무의 인연은 2006년 초 시작됐다. 당시 성 실장의 아버지인 성명모 사장이 이마트와 거래를 시작하면서 담당 임원과 협력업체 대표로 자연스레 알게 됐다. 두 사람은 학연이나 지연 같은 인연도 없었다. 최 상무에게 성 사장은 500여 개 협력업체 중 한 곳의 대표에 불과했다. 최 상무는 “첫인상이 무척 밝았고 우리 회사와 거래하는 걸 자랑스럽게 생각하시는 분”이라며 “품질과 작업환경, 윤리경영 여부를 기준으로 한 실사평가에서 가장 높은 점수를 받아 신세계 임원들이 견학을 갈 만큼 우수한 협력업체였다”고 회상했다. 이후 두 사람은 신규 매장 오픈 행사 등에서 종종 만나 인사를 나누는 사이로 발전했다.

 상황은 2009년 1월 성 사장이 급성췌장암으로 사망하면서 급변했다. 아들인 성원서 실장이 갑자기 회사를 맡게 됐다. 한양대 야구 특기생이던 그는 ‘경영의 경’자도 모르는 상태였다. 방학 때 회사를 찾아 아르바이트생으로 일한 게 전부였다. 뒤늦게 사망 소식을 접한 최 상무는 다른 직원과 함께 납골당을 찾았다가 성 실장을 처음 만났다. 최 상무는 “우리나라 현실상 상품 개발과 영업은 물론 회사의 모든 업무를 담당하는 사장이 사망하면서 중소기업 자체가 몰락하는 경우를 너무 많이 봐왔다” 며 “친아들 같은 느낌이 들던 성 실장이 과연 잘 해나갈 수 있을지 걱정했었다”고 기억했다.

 이때부터 최 상무는 거래를 이어가는 것은 물론 동서P&W의 경영이 정상화될 때까지 시간을 두고 기다려줬다. 이마트 소속 바이어들은 성 실장에게 기존 상품 개발 내역과 업무 진행 상황을 인수인계해줬다. 신상품 트렌드를 알려주고 신제품 개발도 먼저 제안했다. 2009년 이마트 생활용품팀과 동서P&W가 함께 개발한 ‘유아겸용 변기시트’는 성인과 유아가 함께 사용할 수 있도록 이중 구조로 고안돼 히트를 쳤다. 잇따라 인기 상품을 내면서 2008년 당시 17억원 규모였던 거래액은 지난해 42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현재 동서P&W는 이마트에서 팔리는 변기시트 전체의 30%가량을 차지한다. 거래선이 안정되면서 회사는 빠르게 안정을 되찾았다. 오너의 사망을 틈타 동서P&W의 몰락을 기대하던 경쟁업체들도 사람 빼가기와 회사 흔들기를 중단했다.

  최 상무는 “아버지를 잃은 성 실장에게 경쟁업체와 동일한 기회를 주려 했을 뿐 특별히 뭔가 베푼 것도 없다”고 말했다. 성 실장은 “돌아가신 아버지와 최 상무 보기에 부끄럽지 않은 제품을 만들어 회사를 더 크게 키워낼 것”이라고 화답했다.

글=이수기 기자
사진=김도훈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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