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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벨트, ‘-α’로 풀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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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노 재 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나는 ‘물 좋고 정자(亭子) 좋은 곳 없다’는 옛말에 담긴 지혜와 통찰을 사랑한다. 평정심도 이런 지혜를 자주 되새기는 데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살다 보면 가끔 금상첨화(金上添花)의 순간이 찾아들기도 하지만, 얼마 못 가 설상가상(雪上加霜)·화불단행(禍不單行)에 시달리는 게 세상 이치다. 하지만 개인을 넘어 지역·집단 차원의 사회문제가 터지면 이게 말처럼 쉽지가 않다. 지역 간 치열한 이해다툼이 벌어지는 와중에 한낱 헛소리로 취급받기 마련이다.

 그렇더라도 지역·집단 차원의 문제가 매사 ‘물도 좋고 정자도 좋은’ 쪽으로 풀리는 것은 아니다. 공짜 점심은 없다. 식비를 치르거나 다른 것을 내 줄 각오를 해야 한다. 그 점심이라는 것이 사회 전체의 공공재일 경우엔 더욱 그렇다. 전국의 지자체와 정치인들이 시끄럽게 다투고 있는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입지 문제도 이 점을 염두에 두어야 풀 수 있다. 무려 3조5000억원의 국민 세금이 과학벨트에 투입된다. 벨트를 여러 지역에 나누어주자는 얼빠진 주장을 논외로 친다면, 전 국민의 혈세가 어느 한 지역에 쏟아지는 것이다. 유치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여도 야도, 진보 보수도 없다. 저마다 자기네 고장만 ‘최적 지역’이라고 외친다. 각기 그럴 듯한 근거와 이유를 댄다. 게다가 애초 대통령이 공약한 곳은 대선 때마다 캐스팅 보트 역할을 했다는 충청도다. 내년 총선·대선을 앞두고 정부의 입이 바짝 타는 것도 당연하다.

 과학벨트를 과학인의 손에 맡기자는 주장은 기본적으로 옳다. 문제는 그게 필요조건이지 충분조건은 못 된다는 것이다. 과학벨트의 경제성, 접근성, 부지확보의 용이성, 지반 안정성, 외국인도 반길 생활환경 등은 당연히 구비돼야 한다. 오는 4월 5일 시행될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 조성 및 지원에 관한 특별법’에는 이런 점을 염두에 둔 조항들이 수두룩하다. 남는 것은 딱 하나, “어디냐”다. 두 가지가 핵심이다. 과학벨트가 들어설 지역 주민의 ‘자발성’과 다른 지역 주민의 ‘동의성’이다. 후보지로 낙점받은 곳의 주민들이 동의하는 데다 탈락한 다른 지역 주민들까지 어느 정도, 또는 마지못해서라도 동의해 준다면 입지 선정 작업은 정치적으로도 성공이다. 과연 그럴 수 있을까?

 나는 ‘과학벨트 마이너스 알파(-α)’ 방식을 제안하고 싶다. 과학벨트에서 알파(α)를 빼는 것이다. 벨트 유치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게 하는 것이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사용후 핵연료(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리장을 함께 가져가도록 하는 방법이다. 7년 전인 2004년 논의가 시작됐지만 아직도 갈피를 못 잡고 있는 문제다. 고리·영광·울진·월성 원자력발전소의 사용후 핵연료 자체 저장공간은 불과 5~6년 뒤에 모두 포화상태를 맞는다. 정부는 재작년 8월 김명자 전 환경부 장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사용후 핵연료 공론화위원회’를 출범시키려다 직전에 취소했다. 아마 ‘뜨거운 감자’라는 정치적 판단 때문일 것이다. 사실 기피당할 게 뻔해서 ‘-α’라는 표현을 쓰기는 했지만, 사용후 핵연료 처리장 부지 선정 작업도 과학벨트 못지않게 국가 백년대계가 걸린 중대한 일이다.

 물 좋고 정자까지 좋은 곳은 없다. 국제과학비즈니스벨트가 탐나면 방폐장도 함께 가져가야 한다. 원하는 지자체들이 과학벨트 유치 신청서에 함께 모셔올 ‘혐오시설’ 목록을 적어내도록 하면 된다. 사용후 핵연료 처리장, 광역 쓰레기 매립장, 광역 화장장·납골당… 하는 식으로 말이다. 모두 우리에게 꼭 필요한 공익시설이다. 그래야 유치에 실패한 다른 지역 주민들도 ‘어느 정도’ 수긍한다. 지금 상태로는 누가 가져가도 후유증이 뻔하다. 두 개의 커다란 국가적 과제를 일석이조(一石二鳥)로 해결하자. 과학자들이 그런 곳에 안 갈 것이라고? 경주 방폐장을 설계하고 안전성·안정성을 그토록 외쳐온 게 바로 과학계다. 만의 하나 기피한다면 과학자 자격이 없다.

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