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카드 공제 예정대로 올해 말 없어진다면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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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인 강정호(41)씨. 각종 생활비와 자녀 2명의 교육비 등 주요 지출은 신용카드로 한다. 요즘엔 택시·버스도 다 카드로 쓴다. 이렇다 보니 연봉 4000만원인 그의 카드 사용 금액은 매년 2000만원에 육박한다. 최근 연말정산 때 각종 공제 항목을 넣어 계산 프로그램을 돌려보니 결정세액은 47만8750원. 적지 않은 돈을 조만간 돌려받게 될 희망에 부풀어 있다. 하지만 강씨가 돌려받는 금액은 앞으로 21만원 정도 줄게 된다.

 ‘13월의 보너스’라 불리는 연말정산에서 신용카드 소득공제가 올해 사라질 운명이다. 정부는 1999년 신용카드 소득공제 제도를 도입하면서 제도가 끝나는 일몰 기한을 올해 말로 정했다. 일몰 시한을 연장하지 않는다면 신용카드·직불카드·체크카드·현금영수증의 소득 공제 혜택은 올해를 끝으로 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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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민단체인 한국납세자연맹은 9일 “내년에 신용카드 소득공제가 사라지면 봉급생활자들은 총 1조1818억원의 세금을 더 내게 된다”고 밝혔다. 세율이 현재 수준을 유지한다는 가정하에 계산한 것이다.

 문제는 이럴 때 가장 큰 타격을 받는 게 중산층이란 점이다. 납세자 연맹은 “과세 표준 2000만원 초과∼3000만원 이하의 봉급생활자는 7358억원의 세금을 더 내게 된다”며 “이는 전체 세금의 62%에 달한다”고 주장했다.


 세금 혜택을 잃는 대상도 주로 중산층이다. 국세청에 따르면 2009년 전체 직장인(1425만여 명) 중 신용카드 소득공제 혜택을 받은 사람은 568만여 명(39.9%)이다. 이들 소득공제를 받은 직장인 가운데는 연봉이 2000만원 초과~4000만원 이하인 ‘중산층 계층’이 전체의 42.2%를 차지하고 있다. 이에 대해 명지대 조동근 교수(경제학)는 “정부가 재정 건전성을 높이기 위해 세금을 더 거둘 필요가 있다고 해도 중산층 근로소득자에게 더 많은 짐을 지게 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중산층을 두껍게’ 해야 할 세금 정책이 되레 ‘중산층을 얇게’ 해서는 곤란하다는 것이다. 임주영 서울시립대 세무전문대학원장은 “그러잖아도 세금 부담이 큰 중산층에게 신용카드 공제 혜택을 없애는 것은 중산층을 두껍게 하자는 이명박 정부의 정책 취지와 반대로 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는 이미 신용카드 공제 혜택을 해마다 줄여가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애초 신용카드 공제는 (중산층에 혜택을 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영수증을 대신해 탈세를 막기 위한 목적으로 도입됐다”며 “신용카드 사용 문화가 정착된 만큼 공제 혜택을 줄여가는 게 맞다”고 말했다. 2009년 소득공제는 500만원까지 가능했다. 총 급여의 20%만 넘게 쓰면 쓴 금액의 20%까지 공제해줬다. 하지만 지난해와 올해는 한도가 300만원으로 줄었다. 공제 문턱도 좁아져 총 급여의 25% 넘게 사용해야 한다.

 이에 대해 서영경 서울YMCA 신용사회운동사무국 팀장은 “법률 서비스업이나 장례식장·성형외과처럼 신용카드·현금영수증의 사각지대로 남아 있는 곳이 여전히 많다”며 “신용카드 공제제도를 폐지하기는 이르다”고 말했다.

 정치권도 소득공제 폐지가 이르다는 입장이다. 민주당 신학용 의원은 지난달 25일 여야 의원 14명 명의로 신용카드 소득공제를 2년 연장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아직 본격적인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정부는 “아직 결정된 바 없다”는 입장이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신용카드 소득공제 제도의 일몰연장 여부에 대해서는 결정된 바 없다”며 “올해 세법개정안 마련 때 다른 공제제도와 함께 검토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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