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CO2 배출권 거래제, 일본은 왜 연기했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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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이명박 대통령이 7일 정례 라디오 연설에서 “산업계 의견을 최대한 수렴해 적절한 시점에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제를 도입하겠다”고 말했다. 국제 동향과 산업 경쟁력을 감안해 유연하게 추진해 나가겠다는 뜻을 밝힌 것이다. 우리는 이 방향이 맞다고 본다.

 지난해 11월 녹색성장위원회는 ‘2013년 배출권 거래제 시행’을 골자로 하는 관련 법률 제정안을 입법 예고했다. 대상 기업은 이산화탄소(CO2)를 한 해 2만5000t 이상 배출하는 468개 업체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녹색성장의 기치를 높이 들었다. 어차피 가야 할 길이라면 꾸물거리지 말자는 입장이었다. 배출권 거래제는 유럽연합(EU)이 이미 2005년부터 시행하고 있으며 일본도 시행을 목전에 두고 있고, 미국도 적극적인 편이었다. 하지만 지난해 말 이런 분위기가 반전(反轉)됐다. 일본 정부는 12월 28일 각료회의에서 올해 시행하려던 계획을 무기 연기했다. 미국은 11월 중간선거에서 친(親)기업적인 공화당이 압승하면서 도입을 주장했던 민주당 목소리는 사그라졌다.

 이에 국내 산업계는 녹색성장의 필요성이나 대의명분은 충분히 공감하나 경쟁국의 동향도 무시할 수 없다며 연기를 요청했다. 무엇보다 전자·자동차·철강·선박 등 주요 제조업에서 치열하게 맞붙고 있는 일본이 연기한 제도를 우리가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본다. 배출권 거래제가 시행되면 현재 연간 6300만t의 CO2를 뿜는 포스코는 배출권 구입에 한 해 2조원 이상을 써야 한다. 제조업체 전체로는 연간 6조~14조원의 부담이 새로 생길 것으로 관측된다.

 물론 이 제도의 장점은 있다. CO2를 할당량보다 적게 배출하는 기업은 그 차이만큼을 시장에 팔아 돈을 벌 수 있다. 이럴 경우 관련 기술 경쟁을 유도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본이 자국 기업의 국제경쟁력 약화를 우려해 유보한 정책을 우리 기업에 밀어붙이기는 곤란하다. 명분도 좋지만 국가 간 이익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들의 동향도 살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