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금리 또 찔끔 인상 … 그린스펀 따라하기,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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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중국의 금리 인상이 ‘그린스펀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시장 충격을 감안해 조금씩 꾸준히 올리는 방식이다. 시장이 미리 대비할 수 있어 갑작스레 큰 충격을 받지 않는다. 연방준비제도(연준) 전 의장인 그린스펀은 전임자인 폴 볼커가 급격히 금리를 움직여 시장에 충격요법을 쓴 것과 달리 점진적으로 금리를 조절하는 온화한 작동법을 즐겼다.

 중국 인민은행도 이를 본받고 있다. 춘절 연휴 마지막 날인 8일 기준금리 성격인 1년짜리 예금 금리와 대출금리를 각각 0.25%포인트 인상했다. 이미 충분히 금리 인상을 예상한 세계 금융시장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았다. CNN머니는 “‘그린스펀식’의 금리 정책을 펼쳐온 중국이 완만하게 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시장이 판단했다”고 분석했다. 8일(현지시간) 뉴욕 증시는 상승세로 마감했고 유가도 하락했다. 코스피는 11일 금융통화위원회의 기준금리 인상 우려로 전날에 비해 24.12포인트(1.17%) 내린 2045.58에 장을 마쳤다.


 2009년 이후 한 번도 금리인상을 하지 않았던 중국은 최근 4개월간 세 번에 걸쳐 금리를 올렸다. 인상 폭도 크지 않았다. 인상 시기도 크리스마스나 춘절 연휴 마지막 날로 잡는 등 내수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했다. 금리 인상과 관련해 중국의 신중한 접근은 계속될 전망이다. 머크 뮤추얼 펀드 대표인 액셀 머크는 “중국은 시장에 급진적이란 인상을 주고 싶어 하지 않는다”며 “인플레이션과의 전쟁을 하더라도 점진적인 단계를 밟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럼에도 변수는 있다. 식료품발 인플레이션이다. 식료품 가격이 치솟으면서 인플레이션이 심해지면 중국의 금리 정책이 ‘그린스펀 스타일’에서 벗어나 ‘폴 볼커 스타일’로 선회하는 상황도 가정할 수 있다고 CNN머니는 지적했다. 1979~87년 연준 의장을 역임한 폴 볼커는 석유 파동 등으로 물가가 두 자릿수로 뛰자 ‘대학살’로 불릴 만큼 과감한 금리 인상을 단행했다. 취임 당시 10%대이던 금리는 81년 20%대까지 치솟았다. 고금리 정책으로 81년 13.5%에 달하던 물가상승률은 83년 3.2%까지 떨어졌고 볼커에게는 ‘인플레 파이터’라는 별칭이 붙었다.

 그린스펀식을 고집할 만큼 중국 내 사정이 간단하지는 않다. 밀 가격이 두 달 전에 비해 8% 오르는 등 식품 가격은 상승세다. 지난해 12월 4.6%를 기록했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올 1월 5% 후반대에 이를 전망이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은 애널리스트의 전망을 인용해 올 상반기 물가상승률이 6%를 넘을 것으로 예상했다.

 중국 당국도 인플레이션에 적극적으로 대응할 태세다. 저우샤오촨(周小川·주소천) 중국인민은행 총재는 춘절 연휴가 시작되기 전 한 인터뷰에서 “인플레이션에 적극 대처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HSBC 아시아경제연구소의 공동대표인 추홍빈은 “6월까지 0.25%포인트의 금리 인상과 1.5%포인트의 지급준비율 인상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했다. 액셀 머크 대표는 “중국은 조만간 그린스펀 따라하기에서 벗어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높은 수준으로 금리를 올릴 것”이라고 내다봤다.

 중국의 잇따른 금리 인상은 인플레이션 압박에 시달리는 각국의 금리 인상을 부추길 것으로 예상된다. WSJ는 한국 금융통화위원회가 11일 회의에서 금리를 인상할 것으로 예상했다. 프루덴셜파이낸셜의 시장 전략가인 퀸시 크로비스는 “중국의 금리 인상에 자극받은 신흥국들이 빠르면 몇 주, 늦어도 몇 달 안에 금리를 상향 조정할 것”이라며 “브라질과 칠레, 인도네시아, 인도 등이 금리를 상향 조정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하현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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