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대통령의 집념과 정치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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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어제 중계된 신년 방송좌담 ‘대통령과의 대화’는 이명박 대통령의 생각을 자세히 들어볼 수 있는 기회였다. ‘대통령과 국민의 소통’이란 측면에서 필요한 자리였다. 그러나 그 형식이나 내용을 뜯어보면 아쉬운 점이 적지 않다.

 대통령이 주장한 주요 지적들은 원론적으로 맞는 얘기들이다. 개헌의 경우 그 필요성에 대한 공감대는 넓게 펴져 있다. 1987년 민주화 운동의 성과로 만들어진 현행 헌법은 독재권력 청산이라는 당시의 시대정신을 반영했다. 하지만 이후 24년이 지나는 과정에서 새로운 시대에 맞춰 수정할 대목이 많다. 행정구역 개편과 같은 경우 필요성은 더더욱 분명하다. 현 행정구역은 일본 식민지 시절에 만들어진 것이라 시대착오도 이만 저만이 아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국회에서 서둘러 비준해야 한다는 주장 역시 맞다. 대외무역 의존도가 85%인 나라에서 FTA는 불가피하다. 국회 인사청문회나 예산결산심의와 같은 제도들에 문제가 있다는 대통령의 지적도 너무나 당연하다.

 문제는 옳다고 다 가능하지는 않다는 점이다. 대통령이 주장한 문제점은 이번에 처음 제기된 사안이 아니다. 그 필요성이나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바뀌지 않고 있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정치는 현실이다. 좁게는 정당이나 정파 간 이해가 갈리기 때문이고, 넓게는 국민적 공감대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헌의 경우 정치적 파급효과가 심대하기 때문에 정치세력 간 이해다툼이 극명하다. 대통령이 아무리 좋은 취지에서 얘기를 해도 그 진의를 의심하는 사람이 많을 수밖에 없다. 특히 대통령이 얘기하는 남북관계나 환경과 같은 미래 이슈까지 감안해 헌법을 바꾸자면 논의 과정이 매우 신중해야 하며, 그만큼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행정구역 개편은 수년간 연구한 결과 정부와 국회에서 법안까지 이미 다 만들어 놓았지만 주민들의 동의 없이는 한 발짝도 못 나간다. FTA와 같은 경우도 촛불시위에서 보았듯 국민적 공감대 없이 추진했다간 합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역풍을 맞을 수 있는 이슈다.

 이런 상황에서 정말로 필요한 것은 대통령의 정치력이다. 아쉽게도 이날 좌담에서 대통령은 대부분의 책임을 여의도로 넘겼다. 대통령은 정부에서 열심히 일하면 된다는 인식이다. ‘정부는 정치가 아니다’며 ‘팀워크가 맞는 사람을 골라 쓰는 것’이라고 했다. 그런 인식이 깔려 있기 때문에 인사청문회가 열릴 때마다 후보들의 도덕성이 도마에 오르고 낙마(落馬)가 잇따르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대통령이 자기 방식을 고집하는 바람에 자신이 그렇게 하고자 하는 일을 제대로 못하는 결과를 낳고 있는 셈이다.

 분명한 소신은 좋은 리더십이다. 하지만 아무리 맞는 일이라도 집착해선 안 된다. 대통령이 할 일은 국회와 대화하고 국민을 설득하는 일이다. ‘정치는 정치대로 노력하겠다’는 대통령의 한마디에 기대를 걸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