엘바라데이, 깨끗한 이미지로 야권 구심점 … 미국 바람대로 움직일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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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현지시간) 이집트 수도 카이로의 타흐리르(해방) 광장에 수만 명의 시민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앞쪽에 투탄카멘의 황금가면 등 유명한 고대 유물이 모여 있는 이집트 박물관의 돔이 보인다. [카이로 AP=연합뉴스]

이집트 사태에서 ‘반(反) 무바라크 세력’의 핵심 인사로 떠오른 무함마드 엘바라데이 전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68·사진).

 그는 이집트 최대 야권세력인 무슬림형제단, 거리 시위를 주도한 ‘4·6 청년운동’ 등 야권단체에 의해 대(對) 정부 협상위원회의 대표로 추대됐다. 무바라크 정권에 맞설 야권의 중심에 선 것이다. 그는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수천 명의 시위대가 모인 카이로의 타흐리르 광장에 나타나 “무바라크 퇴진”을 외치며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했다. ‘카리스마가 없다’ ‘기회주의적이다’는 비판이 들끓던 와중이었다. 엘바라데이를 중심으로 야권이 세를 결집하면서 이집트의 반정부 시위는 새로운 전기를 맞고 있다.

 정치적 성향이 다른 이집트 야권세력이 한목소리로 그를 대표로 추대한 것은 2005년 노벨평화상 수상자라는 높은 지명도가 한몫했다. 그는 오랫동안 IAEA에 몸 담으며 탁월한 조정능력을 보였고, 기존 정권과 전혀 관련이 없는 깨끗한 인물이라는 이미지도 갖고 있다.

 무바라크 정권 타도라는 공동의 목표를 가진 야권 세력에게 세를 결집하고 국민적 지지를 모을 수 있는 상징적 인물로 그가 가장 적합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그가 과연 반 정부 시위세력의 실질적 지도자로 자리매김하고, 정권교체를 이뤄낼 수 있을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는 견해도 만만찮다.

 일단 30년 가까운 해외생활로 국내 지지기반이 약하다. 야권세력 내부에서도 엘바라데이를 지도자라기보다는 ‘얼굴마담’으로 보는 분위기가 아직은 강하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엘바라데이에게 타흐리르 광장으로 가 연설하라고 권한 건 ‘4·6 청년운동’이다. 하지만 4·6 청년운동은 그를 반정부 시위의 구심점으로 볼 뿐 대통령 후보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이슬람 원리주의 색깔이 짙은 무슬림형제단이 서구식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엘바라데이의 정책과 어디까지 타협할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미국이 선호하지 않는 것도 그의 한계로 지적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그가 IAEA 사무총장 시절 미국의 외교정책에 반기를 들었으며, 이집트 대통령이 되면 친미 외교노선에서 상당히 벗어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엘바라데이는 미국의 조지 W 부시 정부 때 “이라크에서 (이라크 전쟁의 명분이었던)대량살상무기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히는 등 미국과 불편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

이 같은 약점을 갖고 있는 엘바라데이로서는 미국의 신뢰를 받고 있고, 비교적 청렴한 이미지를 지닌 무바라크 정권의 2인자 오마르 술레이만 부통령과의 연대가 매력적인 카드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이집트 정가에선 나오고 있다. 하지만 엘바라데이가 반정부 시위대의 중심축이 돼 무바라크 대통령을 퇴진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그 과정에서 야권 제 세력을 아우르는 지도력을 발휘할 경우 ‘포스트 무바라크’ 대열에서 가장 앞서갈 수도 있다.

정현목 기자

◆키파야(Kifaya)·바르라(Barra)=키파야는 아랍어로 ‘충분하다’는 뜻으로 “30년 장기 집권으로 충분하니 더 이상은 안 된다”는 의미의 시위 구호로 쓰인다. 바르라는 ‘떠나라’는 의미로 무바라크의 가운데 부분과 발음이 비슷해 정권 퇴진 구호로 쓰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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