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대규 휴맥스 사장 “일본 전철 안 밟으려면 혁신 뿐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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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변대규(51·사진) 휴맥스 사장은 지난해 가장 감명 깊게 읽은 책으로 애덤 스미스의 『도덕감정론』을 꼽았다. 도덕적 행동이 다른 인간의 공감을 끌어내는 데 최적격이라는 내용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그 자신도 창업 이래 도덕적 기업을 일구는 꿈을 유지해왔다. 일부에서는 보수적 경영이 너무 고지식하다고 폄하했지만 개의치 않았다.

 변 사장의 휴맥스가 매출 1조원을 넘어섰다. 1980년대 창업한 벤처기업 1세대로는 처음이다. 휴맥스는 26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지난해 1조52억원의 매출을 달성했다고 밝혔다. 1989년 창업 이후 21년 만이다. 지난해 영업이익은 751억원이다.

 변 사장은 서울대 제어계측공학과 박사과정 당시 신림동 포장마차에서 6명의 친구들과 창업을 결의한 뒤 온갖 시행착오를 겪었다. 95년 셋톱박스 사업에 진출하면서 2001년 매출 1000억원을 넘겼다. 그로부터 딱 10년 만에 매출 1조원 벽을 넘어섰다. 별다른 기업 인수합병(M&A)도 없었다. 매출의 98%가 수출에서 이뤄졌다. 15개국에 영업법인이 있고, 폴란드에 자체 공장을 둔 ‘작지만 큰’ 글로벌 기업이다.

 변 사장은 “제품 개발에만 신경 쓰다 사내 소통, 공급망 관리 등 내부 역량을 키우는 쪽으로 초점을 돌렸더니 매출 1조원 달성이 가능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40년 동안 신생기업 가운데 매출 1조원을 넘긴 회사는 NHN과 웅진·이랜드 등 5∼6개에 불과하다. 변 사장은 “우리 경험상 작은 기업은 늘 작고, 큰 기업은 늘 큰 기업으로 남았다”면서 “그런 점에서 매출 1조원을 돌파한 휴맥스가 다음 창업세대의 ‘롤 모델’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변 사장의 요즘 관심은 중단 없는 혁신이다. 그는 미국의 TV·자동차 산업을 열심히 추격하던 일본이 막상 미국을 제치고 선두에 올라선 뒤 성장 정체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을 주목하고 있다. 미국 경제의 지속적인 성장은 마이크로소프트·애플·구글 등 혁신 기업들이 연이어 나왔기에 가능했다. 그는 “일본을 추격해온 한국 경제가 혁신 없는 모방을 계속한다면 일본이 간 길을 그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변 사장은 또 다른 신사업에 도전한다. 자동차용 셋톱박스와 TV를 제작 판매하는 ‘카 인포테인먼트’ 사업이다. 올 7월 디지털방송으로 전환하는 일본이 데뷔무대다. 시장이 성숙하기 전에 진입하겠다는 것이다.

심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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