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봤습니다] 설승은 기자의 겨울 특전사캠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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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을 못 쉬겠어요.” “고춧가루 한 가마니를 마신 것 같아요.” 고통스러운 외침이 터져나왔다. 눈물과 콧물이 얼굴을 타고 줄줄 흘렀다. 화생방 훈련장 안에 최루가스가 퍼지자 숨을 들이쉴 때마다 기관지가 찢어지는 듯했다. 겨울 특전(特戰)캠프의 화생방 훈련 광경이다.

영하의 날씨에도 훈련에 여념이 없는 특전캠프 입소생들. 체력을 단련하며 정신력을 무장한다. [김진원 기자]

훈련생들은 숨을 참으려고 애쓰지만 ‘앉았다 일어나기’를 반복시키는 조교들의 지시 때문에 가스를 계속 들이마실 수밖에 없었다. 여기저기서 기침소리가 났다. ‘꾹 참자’ ‘조금만 더’라고 속으로 외치며 고통을 견디는 순간 문이 열리고 밖으로 나왔다. 훈련생들은 눈물 범벅이 된 채 ‘해냈다’며 서로를 격려했다.

기자가 일일 체험을 위해 특전캠프를 찾은 20일은 24절기 중 가장 춥다는 대한(大寒)이었다. 캠프가 열리는 경기도 부천의 육군 제9공수 특전여단 부대 안에 칼바람이 몰아쳤다. 특전캠프는 28일까지 1, 2차로 나뉘어 전국 6개 특전사 부대에서 열린다. 18일부터 21일까지 진행된 부천 특전캠프에는 남자 175명, 여자 70명 등 총 245명이 참가했다. 성인 12명을 제외한 233명은 모두 중·고생이었다. 이들은 안보교육을 받은 후 화생방훈련, 레펠, 타이어 끌고 달리기, 사격훈련, 야간행군 등 각종 특전사 훈련을 체험하며 3박4일간 체력과 정신력을 기른다.

“힘내라.” “뛰어라.” 학생들이 타이어를 매달고 이어 달리기를 하고 있었다. “친구들이 열심히 뛰고 있는데 잡담하는 두 사람은 열외 합니다.” 조교의 매서운 말이 끝나자마자 두 학생이 앞으로 나왔다. “예, 그렇습니다.” “예, 아닙니다.”라고 크게 대답하며 기합 받는 모습이 제법 군인 같았다. 말투에도 군기가 묻어났다. 일상적인 말도 모든 어미가 ‘다’와 ‘까’였다. 친구들이 기합을 받고 들어온 학생의 등을 두드렸다. 힘든 훈련 속에 서로를 격려하며 단결하면서 같은 내무반원끼리도 돈독해졌다.

특전캠프에서는 식사 후 자신의 식판을 직접 닦아야 한다.

이곳에서 1986년부터 88년까지 군 생활을 했던 조준형(45·인천·자영업)씨는 1남1녀의 자녀들과 함께 캠프에 입소했다. “어젯밤 야간행군 때 아이들에게 20㎏이나 되는 군장을 메고 가는 모습이 안쓰러워 대신 들어줄까 물어봤더니 ‘우리가 해내고 말 거야’라며 거절하더라”고 말했다. 조금만 힘들어도 응석을 부리던 아이들이 특전캠프를 통해 강한 아이들로 바뀌는 모습을 보며 조씨는 흐뭇해했다. 훈련 내내 입소자들을 직접 챙기던 9공수여단 김기정 소령도 “하기 싫은 일은 피하려고만 하던 학생들이 캠프 3일차인 지금은 자신과 싸우며 강인한 정신력을 가진 학생들로 변했다”고 말했다.

캠프 3일차 훈련은 지상 11.5m 높이에서 떨어지는 레펠 훈련으로 마감했다. 4명씩 탑 꼭대기로 올라가 한 사람씩 뛰어내렸다. 경북 구미에서 온 권소미(선산여중 3)양은 고소공포증을 이기고 결국 “엄마, 아빠. 사랑해요”를 외치며 낙하에 성공했다. 권양은 “올라갈 땐 정말 무서웠는데 뛰고 나니 뿌듯하다”며 “이제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웃었다. 박준형(인천 광성중 3)군도 “캠프에 와 고된 훈련을 경험하면서 ‘공부가 제일 쉽다’는 걸 느꼈다”며 “이제 공부를 즐겁게 하겠다”고 거들었다.

화생방을 비교적 잘 견뎌낸 기자도 레펠만큼은 눈앞이 캄캄했다. 학생들의 응원에 눈을 질끈 감고 겨우 낙하에 성공했다. 뛰어내리던 학생들이 외치던 말을 기자도 모르게 외치고 있었다. “나도 할 수 있다. 나도 할 수 있다.”

글=설승은 기자
사진=김진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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