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 체첸전쟁 개입 시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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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스크바〓김석환 특파원]체첸전을 둘러싸고 러시아 내부가 삐걱거리고 있다.

협상론과 확전론이 부닥치는 가운데 정치권과 군부가 저마다의 이해를 앞세워 갈등하고 있다고 네자비시마야 가제타지가 최근 보도했다.

크렘린의 친서방 - 친베레조프스키계 그룹인 블라디미르 볼로신 행정실장 등은 협상을 통해 조속히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서방의 압력과 그에 따른 국가 이미지 실추를 더이상 내버려두기 어려워졌다는 이유다.

늘어나는 민간인 희생은 러시아의 국제적 입지를 더욱 어렵게 할 것이라는 얘기다.

최근 들어 빠르게 힘과 인기를 더해가는 블라디미르 푸틴 총리와 군부내 강경파를 견제하고 가능하면 양자의 사이를 떼어 놓겠다는 뜻도 없지 않다.

그러나 군부는 정치권의 지리멸렬과 지휘부 분열로 참패했던 94~96년의 제1차 전쟁을 다시는 되풀이하지 말자는 입장이다.

기회가 왔을 때 확실히 끝내주자는 얘기다.

아나톨리 크바슈닌 총참모장 등은 협상을 시작하면 사임하겠다고 보리스 옐친 대통령을 압박하기도 했다.

크바슈닌은 군부내 민족주의.대국주의적 열망을 대변하고 있다.

옐친을 직접 움직여 러시아군의 코소보 전격 진입을 단행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물론 군부도 한목소리를 내는 것은 아니다.

전략로켓군 출신의 국방장관은 전략로켓군 현대화에만 매달려와 육군 등의 불만을 사왔으며 코소보사태나 체첸사태에 비교적 유화적인 입장이다.

크렘린의 이같은 갈등을 야당이 놓칠 리 없다.

예브게니 프리마코프 전총리-유리 루즈코프 모스크바 시장팀에 가까운 신문 '모스코프스키예 콤소몰레츠' 등은 크렘린의 갈등을 은근히 부추기고 있다.

푸틴에 대한 서방의 부정적 이미지도 아끼지 않고 전하고 있다.

푸틴에 맞서기 위해 한시적이나마 크렘린의 왕당파와 손을 잡은 셈이다.
<kshp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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